[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책을 가까이 하던 난 시력이 나빠지면서 읽는 것 보다는 TV를 본다. 주로 뉴스를 보거나 드라마, 요즈음은 가요를 즐겨 듣는다.

"밥이 되어라" 일일 연속극이 전개 되는 장면은 과거와 현제 미래를 넘나들며 펼쳐지는데 많은 상념에 빠져 들게 한다.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이혼하고 한 부모 가정을 꾸리는 이들의 가슴시린 사랑,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자식을 버린 부모들, 어린 아이들의 심리를 작가는 잘 묘사하고 있다.

자식을 입양하여 사랑 없이 키우다 참혹하게죽인 사건을 보며 통탄(痛嘆)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는 1919년생이시다. 1957년 나라는 6,25전쟁 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다. 밤톨 같은 어린 삼남매를 두고 아버지는 돌림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백일도 지나지 않은 막내가 배고파 빈 젖을 파고들며 밤새 보챘다. 산모는 밤잠을 설치고도 일을 해야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그 모진 고생을 상상만 해도 어찌 사셨을까.

오직 자식 등 따뜻하게 잠재우고 배불리 먹이고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信念)으로 세상을 겁 없이 살다 가신 분이다.

어머니와 동생을 내 살점처럼 사랑하며 살았던 날들이 그리워 "밥이 되어라"드라마를 보다 눈물이 핑 ㅡ돌때도 있고 경수 총각의 따듯한 사랑에 빠져 버렸다.

어머니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돌림병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외로움과 고독함의 트라우마가 생겼던지 그 한풀이를 내게 하셨다. 사위 감을 고르고 고르셨는데 종갓집 오형제의 12식구나 되는 집에 나를 시집보내셨다.

어미 없는 조카를 보듬고, 시동생들에게 쓴 소리 들었지만 사랑 넘치던 시집살이를 인내(忍耐)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그것은 어머니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었으며 자신을 사랑한 날들이었다.

설 명절을 앞에 두고 이젠 조카며느리에게 바톤을 터치하고 바라보니 흐믓 함으로 가득하다

시어머님께선 부뚜막과 벽을 황토 흙을 개서 빗자루로 페인트 칠 하시듯 부엌이 깔끔하게 보이게 분칠을 하셨다.

맏동서와 부엌바닥에 자리를 깔고 놋그릇을 닦았다. 지푸라기 수세미에 기왓장을 곱게 간 가루를 찍어가며 제기를 닦았다. 아궁이 불을 헤집어 언 손을 녹이며 그릇들을 정성들여 광주리에 씻어 놓으면 얼굴이 보일정도로 반짝거렸다.

설 준비는 일주일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안방 모서리에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길렀다. 흰떡을 하고 두부를 만들고 나선 무와 배추로 나박김치를 담는 일은 며느리 몫이다.

작은 설날이면 작은집 식구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뜰에 크고 작은 신발들이 웅성거렸다.

온가족이 모여 제물준비를 했다. 만두를 빗고 기름질을 하며 "호호 하하" 웃음꽃을 피웠던 가난 했지만 마음이 부자요, 사랑 넘치던 옛날이 그립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골목마다 기름 냄새가 붕붕 떠다니고 마당 넓은 집마다 때때옷 입은 아이들이 제기 차고, 자치기 하며 널뛰고 그네 타던 유년으로 타이머신타고 달려가고 싶다.

세상은 물질만능시대로 부족함이 없으나 코로나 19는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거리를 두고 마스크까지 써야 하며 핵가족화 된 가족까지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설 명절을 맞았다.

어디선가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 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꽹과리 소리와 함께 복조리 팔러 다니며 듣던 덕담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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