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한달 전쯤인가 보다.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이 상했다. 아내가 살펴보더니 냉장실이 이상하단다. 이튿날 방문한 기사는 온도조절 부품이 고장인데 제품이 단종이 된지 꽤 되어서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단다. 죄송하다는 기사에게 그게 왜 기사님이 죄송할 일이냐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마땅한 상품을 찾아냈다. 문제는 생산과 배달까지 한 달여가 걸린다는 게다.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한 달이 걸리나 싶었지만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열흘정도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연락을 다시 받았다. 냉장고 없이 지내기가 쉽지 않았다. 식탁위에 널브러져 있는 음식과 식재료를 보는 게 불편했다.

며칠 지나 눈이 많이 오고 기온이 크게 내려갔다.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얼마간 사노라니 보일러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게 보인다. 점검이 필요하단다. 몇 군데 보일러 가게에 전화를 하니 하나같이 통화중이다. 마음이 심란하고 집안이 어수선하다.

냉장고가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설치 기사들이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대문을 활짝 열고 냉장고를 옮겨 놓은 후, 차 한 잔 마시고 돌아갔다. 대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오래되어 쇠가 삭은 걸 무리하게 열었나 보다. 맞물렸던 윗부분이 빠졌다. 대문 한 짝이 빠져 담에 걸쳐 있으니 집이 허술해 보인다. 밤새 바람이 얼마나 불었는지 새벽에 나가보니 담에 걸쳐둔 대문짝이 반대편 철문에 위험스레 걸쳐있다. 주차된 차를 파손할 뻔 했다.

며칠 사이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다. 겨울에 당할 수 있는 건 수도관 동파만 빼고 다 겪는가 보다. 대문수리 비용이 많이 든단다. 가계에 주름살이 갈 까 망설이고 있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은 채 며칠 지나자 아내는 보일러를 리셋해 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환호성과 함께 정상작동이 된단다. 그제야, 장인어른이 십여 년 보일러 가게를 하셨던 게 생각났다.

대문 때문에 여기저기 문의하다 잔 고장을 수리해준 분이 떠올랐다. 전화 응답이 시큰둥한데, 그래도 와 보겠다고 한다. 이삼일 지나 방문해, 대문 상태를 보더니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리하잔다. 표시가 나지만 튼튼하기는 할 것 같았다. 대문까지 수리하고 나니 세 가지 문제가 말끔히 정리되었다.

별 탈 없이 버텨주던 것들이 왜 연이어 문제를 일으켰을까? 부품 수명이 다했거나, 장애물이 끼었을 때, 혹은 무리한 힘이 가해지니 고장이 났을 게다. 노자 식으로 얘기하면 정상적 작동을 거스르는 위(爲)의 끼어듦이 있었다. 자연스러움이 깨지니 고장이 났다. 다시 무위(無爲)하게 돌리는 게 수리다. 수명이 다한 것을 새 것으로 갈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무리해서 고장 난 걸 바로 잡으니 자연스레 작동하고 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인간(?)의 행위(爲)가 거짓과 잘못(僞)되기 쉽다는 걸까? 하지만 위(僞)를 손보아 무위(無爲)로 하는 일도 때론 인간의 위(爲)일 때가 많지 않은가? 무위(無爲)는 무불위(無不爲)라고 한다. 자연처럼 기능하는 게 무위(無爲)다. 그 때는 손대지 말고, 유위(有爲)가 되었을 때 다시 자연 상태로 돌리는 위(爲)가 필요하다. 무위(無爲)에 이르도록 위(爲)를 했더니 다시 평안이 왔다. 위(爲) 무위(無爲)가 평안(平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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