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년 넘게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예견된 일이지만 껍데기만 남은 민족명절 설을 보내야 할 듯 싶다. 이미 지난해 반쪽짜리 추석명절을 경험했지만 이번 설은 그 강도가 다르다. 5인이상 모임 금지는 명절나기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친척과 친지를 비롯해 고맙고 반가운 이들과의 만남을 오래전 포기한데 이어 한가족마저 함께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방역상황은 여전히 숨통을 죄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어려운 상황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어디 하나 숨돌릴 곳이 없는 명절이 된 셈이다.

이러니 '사상초유의 설'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위기의 시장상인들 입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설을 맞는 모습이 온통 낯선 풍경들로 가득하다. 당장 발목이 잡힌 가족모임은 떨어져 사는 부모와 자식의 세대간 갈등을 부르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방역에 대한 고민은 직접적이다. 비수도권 영업제한 완화를 우려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랜 거리두기의 피로도가 문제다. 설 명절연휴가 큰 고비가 될 것이란 전망은 여기서 비롯된다. 조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것을 외면하니 상황이 꼬일 수 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경제적 한파는 설 경기를 최악으로 내몰고 있다. '금계란'으로 상징되는 생활물가의 고공행진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설 상차림을 위협한다. 모이는 인원이 줄다보니 제수용품 등도 적어지고 간소화된다. 시장을 찾는 이들도 줄었지만 장바구니는 더 가벼워졌다. 명절을 앞두고도 신용카드 매출은 계속 내리막이다. 그것도 매달 15% 정도 줄어 체감경기는 바닥이었던 지난해 3월보다도 낮다. 비수도권의 영업제한 1시간 완화는 답답함을 푸는데는 몰라도 업주들 주머니에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기업인들도, 근로자들도 이번 설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청주상의 설문조사에서 '체감경기 악화'라는 응답이 57%나 됐다. 코로나 시작즈음인 지난해에 비해 7.6%p나 높아진 수치다. 근로자들의 지갑도 얇아졌다. 상여금 지급 폭이 크게 준 것이다. 그러나 설 경기를 바라보는 정부와 지자체의 시각은 다른 것 같다. 제조업의 상황이 양호한 만큼 시간차를 두고 전체적인 경기부진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충북의 경우 수출경기가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소비위축과 침체의 원인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재정여력이 아니라 과도한 경계, 심리적 위축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이처럼 행정기관의 시각이 겉돌다보니 설을 앞둔 지원정책들도 엇박자다. 수치와 여건만 따지는 행정적 접근이 상황인식의 한계로 작용해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 폐업을 전제로 한 지원은 생존 의지를 짓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처지도 곤궁하지만 앞날이 잿빛이다. 무거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부디 평온한 설 연휴로 극복의 기반이 다져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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