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전 YTN 충청본부장

때는 기원 100여 전 중국 전한(前漢). 당시 정치가이자 학자인 육가(陸賈)가 말재주로 명성을 사방서 얻고 있었다. 한 고조 유방이 육가를 급히 불렀다. 아직 한 나라에 복속을 거부한 채 변경을 들쑤셔 대는 남월(南越) 지역의 왕 위타를 잠재우기 위해서다. 위타 설득을 위한 사자로 변설(辯舌)의 대가 육가를 보냈다. 명을 받들어 육가는 남월 지역으로 떠났다. 자주 제후국에 사자로 가 책무를 완수했지만, 위타는 무척 까다롭고 상식이 통하지 않아 육가는 출발부터 걱정이었다. 하지만 육가는 며칠 동안의 설득과 회유 끝에 드디어 남월을 한나라를 복속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변설의 진가가 발했다.

복속의 공은 참으로 위대했다. 유방은 이제 명실공히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했기 때문에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는 천금(千金)을 흔쾌히 육가에게 주었다. 천금도 모자라 태중대부(太中大夫: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관직)를 부여했다. 유방을 섬기면서도 육가는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유가 사상에 근거한 <신어:新語>를 손수 지어 올렸다. 왕도정치를 실행하고 패도정치를 배격하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유방이 죽자 황후 여태후(呂太后)가 황권을 대행했다. 이 과정에서 태후는 측근 신하들과 자신의 후손 여 씨를 왕으로 삼으려는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육가는 불가함을 간언했지만 소용없었다. 더 궁궐에 머물 명분이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낙향했다. 황제를 섬기는 일이 이제 끝났다며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게 살기로 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운명을 짐작한 육가는 아들 다섯 명에게 고조로부터 받은 천금과 재산을 똑같이 나눠주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이제 4두 마차와 가무 악기에 능한 시종 열 명뿐이다. 이제부터 이 마차를 타고 다니며 가무와 함께 여생을 즐길 것이다. 단, 숙식을 위해 열흘씩 돌아가며 너희들 집에서 머물 것이다. 내가 죽으면 죽은 집에서 마차, 악기, 시종들을 모두 갖도록 해라." <사기; 역생육가>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있다. 가슬석자(歌瑟析子). '노래하는 가수와 거문고 타는 가인을 자식들에게 나눠 주다.'라는 뜻이다. 이런 뜻이 언제부턴가 누군가에 의해 나이가 들어-정년을 맞아-현직을 그만두는 정년퇴직에 비유한 말로 쓰이고 있다. 어찌 보면 정확한 비유는 아닌 억지춘향식 비유다. 사회에 재산 기부가 아닌 후손 증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나눠줬다는 데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년퇴직에 비유해도 봐 줄 만 하지 않은가?

죽으면서까지 욕심을 버리지 않은 인간도 참 많다. 중국 주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죽으면서까지도 비빈과 궁녀 40여 명(46명?)을 순장하도록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군사 5,000여 명이 자신의 묘, 효릉(孝陵)을 밤낮으로 순찰하며 호위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이는 실제도 실행됐다. 중국 삼국을 통일한 조조는 사후 가져갈 여러 보물의 도굴을 우려해 무덤을 72개나 조성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 역시 실행돼 지금까지 조조의 진짜 무덤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죽어서까지 욕심과 못된 심보를 버리지 않은 이들에 비하면 육가는 퇴직자들로부터 존경받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요즘의 퇴직자들에겐 그저 육가가 부러울 뿐이다. 육가의 발바닥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내놓을 만한 게 부족하기 때문이라 할까? 정년퇴직도 부익부 빈익빈인가 보다. 일할 능력이 없는 데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모두를 내려놓아도 될 텐데 자리를 바꿔 앉는다. 정치력과 정치 인맥을 타고 자리를 옮겨가-낙하산-후배 자리를 빼앗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얘기다.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큰 말 노릇을 한다.'는 우리 속담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여하튼 부와 명예에 대한 이들의 집착은 주원장이나 조조와 다름이 아닌 셈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전 YTN 충청본부장

<순자:권학(勸學)편>에 보면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날 수 있다(靑出於藍:청출어람)'고 했다. <논어:자한(子罕)편>에는 '후배들이 두렵나니, 어떻게 장래의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만 못할 줄로 아는가(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라 했다. 가슬석자는 언감생심인 채 사회로부터 안다미로 받기만 하고 줄 것이 없어 그냥 가야 함을 안타까워하는 퇴직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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