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동짓달 성마른 바람이 눈 쌓인 소나무 가지를 흔든다. 눈꽃이 핀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날아가길 반복하는 참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것 또한 재미있다. 참새들이 패딩을 입은 것처럼 털 찐 모습이다. 참새는 먹을 것이 없어 보이는 나뭇가지를 열심히 쪼아댄다. 서너 마리가 재잘대다 날아가 버린다. 모처럼 참새들의 자유를 본다.

어렸을 적에는 참새가 참 많았다. 미루나무에도, 버드나무에도, 탱자나무에도, 흙담 위에도 참새들이 노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참새를 보호하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어릴 적에는 잡아먹고자 하는 본능이 컸다.

겨울방학이 되면 오빠들은 참새 잡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잡는 방법은 다양했다. 헛간 초가지붕 처마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잠자는 참새를 손을 넣어 잡았다. 잡힌 참새를 받아들면 따뜻한 깃털이 손바닥 안에서 파닥거렸다. 재미를 느낀 오빠는 점점 기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탄성이 좋은 참 사리를 구부려 벼 이삭을 매단 덫을 짚단 더미 위에 놓았다. 어느 날은 삼태기를 세워두고 그 안에 나락이나 쌀을 놓아두고 참새가 들어오길 눈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약삭빠른 참새를 쉽게 잡을 수 없었다. 어쩌다 걸려든 참새들을 아궁이 잉걸불에 구워 껍질을 벗기면 기름기가 전혀 없는 빨간 속살이 나왔다. 내장을 제거하고 바짝 구운 참새를 뼈까지 오독오독 씹으면 맛이 좋았다.

참새 다리 하나를 얻어먹는 날에는 내 키도 부쩍 자라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맛이 좋으면 참새 다리 하나를 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했을까, 운이 좋은 날에는 꿩이 잡히기도 했다. 언니와 나는 오빠가 잡아 온 꿩의 가슴과 목 주변 부드러운 깃털을 뽑았다. 색깔이 고와서 작품을 만들기에 좋았다. 알록달록한 깃털을 모아 스케치북에 하나씩 꽂으면 멋진 작품이 완성되었다.

겨울이 되면 도시에 사는 막내 고모부가 동료들과 함께 값비싼 스즈키 오토바이를 타고 사냥을 하러 찾아오곤 했다. 집 근처 부모산에는 토끼, 꿩, 노루가 서식하고 있었기에 사냥하기에 최적이었다. 가죽조끼에 목이 긴 부츠를 신고 가죽 모자를 쓰고 총알이 꽉 꽂혀 있는 탄띠를 차고 왔는데 허리띠에는 참새가 스무 마리 정도 매달려있었다.

할머니는 막내 사위와 손님들에게 따뜻하게 데운 반주(飯酒)와 찌개로 대접을 했다. 일행들은 정종 한 주전자를 금방 비우고 다시 사냥을 떠났다. 고모부가 번쩍거리는 총을 거꾸로 뒤집어 열심히 펌프질했다. 참새 떼를 조준한 어깨에는 총열이 번쩍였고 개머리판이 "핑"하는 폭발음의 반동을 받아낼 때 마다 영락없이 백발백중 참새가 떨어졌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고모부가 오는 날에는 참새구이를 더 얻어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토바이 라이딩 행렬이 굉음을 내며 마을을 떠날 때면 시골 마을이 들썩였다. 이제는 고모부도 아니 계시고 참새 떼도 사라지고 옛 정취도 사라졌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몸을 한껏 동글동글 모으고 먹이를 찾는 참새를 보면 그 옛날 재미로 잡던 못된 짓이 생각이 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참새에게 먹이를 던져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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