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1절 박도철 열사에 건국훈장 추서 102년 만에 한 풀어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맞은 아들이어 어머니도 총탄에 쓰러져

국가기록원 소장 3.1만세운동 피살자 명부의 박도철 열사 관련 기록. / 국가기록원 제공
국가기록원 소장 3.1만세운동 피살자 명부의 박도철 열사 관련 기록. / 국가기록원 제공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진천 광혜원 4.3만세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23일 진천군에 따르면 1919년 4월3일 당시 만승면(현 광혜원면) 광혜원리 만세시위에서 순국한 박도철(朴道喆·1888~1919) 열사에게 올해 3.1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박 열사 일가는 경기 안성, 경북 상주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이에 따라 박 열사의 공훈은 음성군 금왕면에서 작성했으며, 현재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3.1운동 당시 일인으로부터 피살당한 애국자' 명부에서 이름이 확인됐다.

박 열사는 광혜원리(바들말) 매방앗간 앞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아들의 시신을 부여안고 오열하며 항거한 박 열사의 어머니(이치원 추성)도 헌병의 총탄에 숨을 거뒀다.

광혜원면 만세시위에서는 당시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며,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곳은 진천 광혜원면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제 측의 문헌에는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하고 5명 또는 7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나와있다.

1974년 펴낸 '진천군지'에는 박도철, 이치원, 김경윤, 윤광옥, 김득수, 김예원, 구모씨(이월면 동성리), 성명 미상(이월면 노은리) 등 9명이 순국한 것으로 적혀있으며, 이는 일제 자료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다.

광혜원면 4.3만세시위에서는 윤병한(애족장), 남계홍(대통령표창), 이영호(대통령표창) 등 8명이 옥고를 치뤘고, 수십명이 고문 등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진천향토사연구회(광혜원만세운동기념사업회) 오인근 회원은 "모자(母子)의 한 맺힌 죽움이 102년 만에 풀어졌다"며 "후손 등의 증언과 문헌을 조사한 결과 박 열사는 그동안 박치선, 유치선 등으로 잘못 전해져 확인과 심사과정이 길어지면서 서훈 결정이 늘어졌다"고 설명했다.

오 회원은 이어 "당시 장터에 울려퍼진 광혜원 4.3만세운동의 정신을 잊지않고 계승하는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현창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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