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얼마 전에 편의점에서 생수를 하나 샀는데, 500㎖에 850원이나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박스 단위로 구매를 하므로 잘 몰랐는데, 500㎖에 850원이면 1ℓ에 1천700원인 것이고 물값이 휘발유보다 비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지금 20대까지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물을 판매하고 있었으니 물을 사서 먹는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물을 사서 먹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마다 수돗가에는 수도꼭지가 한 20개쯤 달려서 그곳에서 언제라도 물을 마실 수가 있었고, 길을 가다가 목이 마르면 아무 상점이나 들어가서 물을 좀 달라고 하면 다들 물 한잔 정도는 서로 주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꿈만 같은 시절의 이야기인데, 실제로 그런 시절이 있었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자주 회자하였던 것으로 보아 그때는 '돈을 받고 물을 판다'는 말은 곧 '사기를 친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던 것 같다.

"야 이러다가 나중에는 물도 돈 주고 사 먹겠어"라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사회를 비판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생수를 판매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외국 선수들이 수돗물의 안전성을 의심해서 일시적으로 판매가 허가된 적이 있었는데,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다시 판매가 금지됐다.

그러다가 생수 판매 금지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1994년부터 다시 판매하게 되었는데,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국가가 막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그러니까 생수를 본격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27년 전부터로 그렇게 오래전 일도 아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생수의 원래 이름은 먹는샘물이다.

그런데 먹는샘물에 '생수', 그러니까 살아있는 물이라고 이름을 붙여주니까 생수를 제외한 나머지 물은 '죽은 물'인 것처럼 인식이 되기 시작했다.

생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먹는샘물을 '깨끗한 물', '신선한 물', '몸에 유익한 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먹는샘물에만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저 영속하는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하루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라는 이름이 있다.

계절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이름이 있다.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로 이름 붙여진 날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기념일로 꼽히고 있다.

아무 이름 없는 하루와 이름이 붙여진 하루는 다르다.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어쩌면 우리의 삶에는 이름을 붙여 부를만한 축제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날씨가 따뜻해서 금방이라도 봄이 올 것처럼 마음이 설렜는데, 또 하루 이틀 꽃샘추위도 만만치가 않다.

봄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영속하는 시간 속에 2021년을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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