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문학]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천재적인 수영 실력이 있었지만 대회만 나가면 항상 4등인 준호, 그리고 항상 1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엄마 정애는 국가대표출신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새로운 수영코치 광수를 영입한다. 광수는 대회에서 1등을 시켜주고 대학까지 보내주겠다며, 대신에 엄마 정애가 훈련중인 수영장에 오지 말 것을 조건을 걸었다.

대회가 다가왔다. 준호는 1등과 0.02초 차이로 생애 첫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준호 가족들은 모두 기뻐하며 축하분위기로 흥에 취해 있었다. 이 때 함께 신이 난 동생 기호는 형 준호에게 한마디 던졌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 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그때 화면은 12살 준호의 얼굴과 몸에 살벌한 구타의 흔적인 시퍼런 멍을 보여준다. 2016년 방영된 영화 '4등'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비춰진 스포츠폭력의 현실은 과도한 경쟁에서 비롯한 성적 제일주의가 낳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말하고 있다. 광수가 과거 선수시절 자신이 겪은 폭력을 부정하면서도 입상을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우리 스포츠계가 그동안 폭력이 얼마나 정당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준호는 폭력에 시달리지만 사랑의 매로 받아들이는 피해자로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선수들을 대변했다. 그리고 광수의 폭력을 묵인하고 성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마 정애의 모습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의 성과주의 사회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학교교육이든 스포츠교육이든 지도자는 설득의 자질이 필요하다. 다양한 설득방법중 가장 비인간적이고 지도능력이 없는 방법이 폭력이다. 그런데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필요수단으로 폭력문화를 인정한 우리사회와 우리 스포츠계의 어두운 모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제가 만든 폭력문화를 해방이후에도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특히 스포츠 세계는 해방 이후에도 일부 일본 유학파와 일본스포츠지도자들이 영입되면서 폭력은 당연한 성과를 낸다고 보았다. '스파르타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선수들에게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폭력은 엄밀하게 말하면 스파르타식이 아닌 일본식이다. 또한 운동을 하면 가난을 극복하고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며, 발굴된 선수들에게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올림픽이나 세계대회, 심지어 전국체전까지 금메달을 강요하고 선수보다 금메달을 더 큰 성과로 보아온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또한 소속팀이나 학교, 그리고 지도자들은 운동부 선후배라는 서열을 만들어 놓고 이를 이유로 선수들간의 폭력을 강요하거나 암묵적으로 인정한 환경을 만들었다. 최근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과거 학교폭력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과거 폭력 가해자로 얼룩진 선수들도 깊이 반성해야겠지만, 무엇보다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국위선양을 했다고 애국으로 평가해온 국민, 정부, 소속팀, 그리고 스포츠협회 등 우리사회 모두의 반성과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선수의 인권은 금메달보다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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