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멀리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생일 축하 문자가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내 생일이라는 것이 의아했지만 양력으로는 맞는 날이기는 했다.

"친구야 오늘 찐생 맞니? 프사가 빵빵 터지네. 생일날에는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마음의 텃밭에서는 감사한 싹이 막 자라는 느낌이 들더라. 축하해 생일."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며 생각할 것도 할 일도 많은 가운데 친구들이 어떻게 나의 생일을 챙겼는지 궁금증이 풀리는 문자였다. 이런 민망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SNS에 생일 공개를 하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덕분에 모처럼 친구들의 안부와 소식을 나눌 수 있어서 고마웠다.

양력으로는 맞는 날이라며 고맙다는 나의 답변에 또 다른 친구는 "글쿠나. 오늘 내 음력 생일이었는데 너랑 나랑 생일 같은 줄 알고 깜놀했네. 생일인 오늘 낮에는 미처 엄마에게 전화도 못했네 그려."

친구는 다시 문자를 보내오며 친정어머니에게 전화하지 못한 것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친구처럼 나도 생일을 맞으면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어머니에게 매년 드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전화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이 우울했다.

두어 달 전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다행히 지금은 처음보다 호전되시는 것 같긴 하지만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와 평소처럼 통화도 할 수 없고 삶의 조언과 지혜를 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면회도 자유롭지 못한 것에 늘 마음이 무거운 나날이다.

우울한 마음도 달랠 겸 봄이 오는 들판으로 나섰다. 벌써 냉잇국을 몇 차례나 끓여 먹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나도 봄을 캐러 나선 것이다. 들판 밭고랑 곳곳에 나물 캐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예전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낙네들이 익숙한 모습이었다면 요즘은 부부가 함께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이것 또한 코로나가 바꿔 놓은 풍경인 듯 싶다.

봄이 오면 놓치지 않고 꼭 제철 음식으로 먹고 가는 나물이 있다. 봄을 대표하는 달래. 냉이도 좋지만 나는 지천에 깔려 있어서 지칭개라 불린다는 나물을 좋아한다. 지칭개 고유의 쓴맛을 장시간 물에 담가 충분히 우려낸 다음 된장을 풀고 다듬어진 지칭개에 콩가루를 입혀 약한 불로 푹 끓여내면 구수한 지칭개의 식감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결혼하고 처음 지칭개국을 내손으로 끓이던 날, 쓴맛을 제거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연을 어머니께 하소연 하였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찬찬히 쓴맛이 나지 않는 방법을 설명해 주시며 당신이 아직 자식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셨다. 어디 그뿐이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소소한 문제들을 안부삼아 어머니의 지혜를 빌리곤 했다.

병원으로 어머니께 면회 가는 날이면 긴장되고 한편으로는 설렌다.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엄마, 밖에는 봄이 오고 있어요, 왜 여기 누워 있는데…. 얼른 나아서 집에 가야지. 어제가 정월 대보름이었는데 달이 참 슬프도록 밝았어. 오곡밥은 못해 먹었지만 대신 지칭개국 끓여 먹었어요. 엄마 나물 캐는 거 좋아하지. 가자. 봄나물 캐러 가야지."

나물 캐러 가자고 울먹이는 나의 말에 어머니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은 그 어느 순간에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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