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나의 꼬리는 남다르다. 누렁소가 꼬리로 잔등에 앉은 파리를 단번에 압사시키듯 하느님도 진즉에 실체를 알아보고 민둥산처럼 꼬리를 잘라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관장하는 신도 모르는 구석이 있다. 내 안의 꼬리는 당신의 묘수로도 어쩌지 못한다. 무형의 꼬리는 나의 마음에 따라 신출귀몰, 카멜레온처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꼬리는 나의 열정과 집념에 따라 사정없이 길어지기도 하고, 돌연 냉담하기가 이를 데 없어 짧아지기도 한다. 새해가 다가오니 나의 꼬리는 비상하는 날갯짓인양 기운이 넘친다.

인간에게는 얼마간의 간격이 필요하다. 격 없이 지내다 보면, 상대의 허물이 드러나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꼬리에는 그런 간격이 필요 없다. 다만, 작가가 글의 맥을 잃으면 글이 안 써지듯 꼬리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꼬리 잇기는 독서, 책과 책 잇기이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하고 다음 책으로 바통을 넘겨야만 꼬리의 맥을 순연히 이어간다는 지론이다. 언제 어디서나 꼬리 잇기를 잊은 적 없기에 새벽에 벌떡 일어나 책을 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나는 묘시에 깨어나 책 읽기를 좋아한다. 고요한 새벽 책상에 앉아 맑은 정신으로 책장을 들추는 순간을 사랑한다.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받은 적은 별로 없다. 책을 편식하는 편도 아니다. 꼬리 잇기의 비법은 저자가 소개한 책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 섭렵하는 거다. 책 이름을 메모하여 서점에서 목차와 서평을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중고서점을 뒤져서라도 책을 사고야 만다. 돌아보니 나는 이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렇게 구매한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적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후회한 책은 별로 없다.

꼬리 잇기는 책 속에서 얻은 이삭줍기다. 그 이삭은 꼬리표를 달고 반드시 나의 손안에 들고야 만다. 평소 글쓰기에 부족한 면을 채우고자 책을 읽는 예도 있지만, 다양한 분야의 독서이니 잡학다식에 가까울 정도이다. 꼬리 잇기의 명수는 다독이다. 시인이 쓴 산문집은 서정의 시어로 감성을 돋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란 명문을 남긴 정호승에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읽다 보니 정채봉 동화작가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나 빨리 하늘이 부른 문인, 맑고 순수한 분의 삶이 궁금해진다. 꼬리로 이어진 책이 정채봉의 산문집 '첫 마음'이다. '마음의 어름을 지워주고 한없이 날아가고픈 동심을 심어주는 풀꽃의 귀띔' 에 마음을 헹구니 더없이 맑다. 다시금 그의 맑은 언어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책 꼬리 잇기는 나의 감성과 지성을 높여준다. 독서는 '혼란한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키우는 내연의 무기'라는 걸 웬만한 사람은 다 알리라. 현재 나의 꼬리는 장석남의 '물의 정거장'에 닿아 있다. 그가 설계한 시공간에서 추억의 '물 긷는 소리'를 들으며 눈과 귀의 식량을 채우리라. 이어 '새떼들에게로 망명'도 주저하지 않으련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