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종철 청주시 정책기획과 법무담당

최근 청주시의 환경 관련 행정소송 결과를 두고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소송에 임하는 상대방 변호사(또는 대형 로펌)를 이길 수 있겠느냐, 행정청도 고액의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항간에서, 심지어 행정청 내부에서조차 흘러나오고 있다. 과연 변호사의 몸값이 행정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을까?

재판에서 판결의 기초가 되는 사실과 증거 등 소송자료를 수집하는 절차를 '심리'라 하는데 이에 관한 원칙으로 당사자주의와 직권주의가 있다. 당사자주의란 소송절차의 주도권을 당사자에게 주고 법원은 관전자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민사소송상의 기본원칙이다. 이에 반해 법원이 소송절차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직권주의라고 한다. 행정소송의 경우 그 결과가 공익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송의 귀추를 당사자에게만 전적으로 맡겨 놓을 수 없다. 그래서 행정소송법은 민사소송과 달리 직권심리의 특칙을 정하고 있다(제25조).

이에 따라 행정소송의 재판부는 계쟁처분 또는 재량에 관계되는 모든 법률문제·사실문제에 관한 재심사권을 갖고 원고의 공격이 날카롭지 못하거나 피고의 방어가 튼실하지 못한 경우에도 직권주의 아래 처분의 위·적법 여부를 직접 정밀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법리적 판단은 내가 할테니 원·피고는 법리적 주장은 말고 사실관계만 말하라'고 하는 극단적인 재판부도 더러 있다. 원고가 굴지의 대형 로펌 또는 고액의 전문변호사를 선임해 복잡한 법리적 주장으로 행정청을 공격했고, 이에 대해 행정청이 반박을 제대로 못했다 하더라도 법원은 행정청의 부실한 반박을 이유로 원고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직권주의에 따라 행정청의 실효적 반박 유무와 무관하게 원고 주장이 옳고 그른지 법원이 직접 검토하고 판단한다는 말이다.

청주시는 근자에 환경 관련 소송에 변호사를 집중 투입한 것들을 제외하면 행정소송의 약 70% 정도를 변호사 없이 공무원들이 직접 수행하는데 상당수의 상대방이 변호사를 선임했음에도 직원들의 승소율(엄격하게는 '非전부패소율')은 70~80%에 이른다. 상대방 변호사보다 더 해박하다거나 소송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바로 직권주의의 결과다.

그러다 보니 행정소송은 원고 대 피고의 싸움이 아니라 원고는 원고대로 재판부를 상대로, 피고는 피고대로 재판부와 싸우는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행정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했다는 것의 행간에는 원고의 대리인이 행정청의 처분에 있는 위법적 요인을 잘 집어내서 '재판부로부터' 승리했다는 것이 숨겨져있는 것이다.

이종철 청주시 정책기획과 법무담당
이종철 청주시 정책기획과 법무담당

행정소송의 저울은 변호사의 몸값에 따라 기울지 않는다. 행정소송에서 패소 원인은 '잘못된 처분'에 있지 '소송수행능력의 부족'에 있지 않다. 행정청의 직원이나 변호사가 방어를 잘하지 못했다거나 원고가 선임한 막강한 변호사에 의해 재판부가 법리를 틀었다거나 심지어 매수당했다고 해선 결코 안될 일이다. 그런 실례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정의가 100% 행하여 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의에 대한 기대를 접고 '돈이 곧 정의'라고 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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