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열두시 조금 넘어 식당 안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하다. 연만하신 목사님은 손님들 많은 게 우리 때문이란다. 그걸 주인과 종업원들이 몰라주는 게 영 불만이신게다. 거의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다.

목사님은 은퇴를 했다. 몇 년 인지 잘 모르나 한 주에 한 번씩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오셔서 그때그때 주제에 맞춰 성경을 풀어주신다. 오랜 세월 들으니 대충은 알겠다. 어떤 건 시작 부분을 들으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이 잡히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갑을 관계가 역전되어 배우는 내가 갑이다. 현 시대는 스승은 많지만 제자가 드물다는 논리였다. 내가 하는 갑질은 수업 중 엉뚱한 얘기하기, 자리뜨기, 반박으로 체면 구겨놓기, 말 안 듣기 같은 것들이다.

목사님은 조선말 우국지사 같다. 성경에서 정치로 빠지기 일쑤에, 정치인들이 잘못한다는 비판이다. 싸움만 하고 천년은커녕 십년 가는 정당이 없다는 거다. 그러면 내가 계절 따라 옷 갈아입는 것과 같고 사람은 늘 비슷하다며 그들은 싸우는 게 본업이라고 대든다. 싸우지 않는 국회는 공산당 밖에 없다고 하면 반박을 못하신다. 얘기에 논리적 비약이 심하니 징검돌을 두라 하면서도 무리한 주문이라는 걸 안다. 같은 말도 그냥 한 바탕 쏟아내면 시원하리라.

강의를 마치면 점심을 같이 한다. 긴 세월 같은 일정이니 가는 데도 몇 군데 정해져 있다. 최근에 자주 가는 곳은 뼈 해장국 집과 감자탕 집 그리고 추어탕 집이다. 가끔씩 가도 여러 번 가다보니 서로 눈에 익어 무엇을 달라 주문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확인하는 수준이다.

모처럼 눈이 내렸다. 차도(車道)야 쉴 새 없이 열기를 뿜으며 차들이 다니니 쉽게 녹지만 인도(人道)에는 눈이 허옇다. 눈길을 헤치고 천천히 걸어 추어탕 집에 왔다. 쌀쌀한 바람과 공기가 겨울을 살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소방서 지나 농협 모퉁이 돌아 작은 골목에 소나무 연못 추어탕 집이 있다. 예스럽게 꾸민 내부가 차분하다.

먹는 것 만한 원초적 본능과 즐거움이 있을까?. 편하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무척 가까운 사이라는 증거다. 그래서 밥 한 번 먹자고 숱하게 말들은 해도 실천은 어려운가 보다. 작은 솥 모양 그릇에 밥이, 뚝배기에 추어탕이 담겨 나온다. 짧은 생을 살고 잡혀와 형체마저 없어져 내 앞에 한 끼로 올라온 추어들을 잠시 생각한다. 내 구차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연(緣)도 없었던 그들과 기묘하게 얽히고 있다.

수많은 생명이 사는 지구 위, 청주의 가경동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한민족 오천년 역사 속에 같은 시대 같은 날을 산다는 게 얼마나 드물고 기이한 인연인가? 나는 꽤 깊은 인연과도 덤덤하게 산다. 내 삶이 지질한 이유가 그것 아닐까 한다. 어쩌랴, 타고난 내 성격이요, 성품인 것을….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별 생각 없는 숟가락질에 그릇이 비워지고 숭늉까지 먹고 나니 밥 한 그릇 탕 한 그릇 숭늉 한 그릇, 세 그릇을 비운 셈이다. 속이 따듯해지고 꽉 차오르는 느낌이다. 모르긴 해도 오늘 저녁은 안 먹어도 든든할 게다. 바깥 날씨가 더 푸근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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