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학교 축제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리크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사회자 핸드폰에 가장 먼저 접속하는 학생에게 상품을 주는 게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게임 중에 전화번호를 공개했다가 지금까지 장난전화나 문자메시지 언어폭력 때문에 번호를 변경해야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사실은 이 게임을 계기로 이어 진행될 발표회 공연을 위하여 객석의 핸드폰 전원을 끄게하거나 예절 모드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는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당하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전화나 E-mail 폭력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하는 교사들이 많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걸려오는 무차별 전화폭력에 시달리던 교사가 아예 전화를 바꿔버린 경우도 있고, 어떤 교사는 무차별 사이버폭력으로 오랫동안 애용하던 E-mail을 폐쇄시켜버리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얼마전 3학년 졸업 앨범 제작 논의 중 부록에 실을 교사와 학생의 주소록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으로써 이 문제가 부장회의와 전체직원회의의 심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이전과 같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모두 싣자는 의견을 비롯하여 전화번호를 제외한 주소록만 싣자는 안, 차라리 시대에 맞게 E-mail 주소를 싣자는 안 등을 놓고 찬반 토론을 벌인 끝에 결국 학생주소록은 그대로 싣되 교사에 관한 정보는 일체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졸업하며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칠판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큼직하게 적어주며 서로 잊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사생활보호'라는 명분으로 사제간에도 불신의 벽을 쌓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는 정보사회 이전부터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러나 ‘유비쿼터스’(Ubiquitous)에 비유되는 첨단정보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종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언제, 어디서나’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혁명처럼 시작된 인터넷은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로써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그러나 많은 선생님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전화폭력이나 사이버테러는 물론 주민등록번호, E-mail이나 주소 등을 훔치거나 위조하여 여타의 범죄를 저지르는 등 요즘과 같은 유비쿼터스시대에는 ‘해커’가 유망 직종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특정 프로그램만 실행시키면 E-mail이나 주소를 이용해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고 이를 이용하여 음란사이트와 같은 인터넷의 유료서비스를 받거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범법행위를 하는 등 개인정보 침해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도 늘어가는 사이버 범죄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을 만들고 정보화의 역기능으로 보아 해킹을 비롯하여 사이버폭력(사이버테러)과 개인정보유출 등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여 단속을 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선생님들이 아무리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전화번호나 주소록 공개를 꺼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각인지 모른다.

제자들에게 전화는커녕 주소나 E-mail까지도 비밀로 해야 하는 불신의 시대, 정보통신이 첨단화된 '유비쿼터스'가 사제간의 인간적인 관계마저 왜곡시키다 못해 이제는 사이버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현실세계의 천재지변을 능가하는 위험을 가져오는 시대가 도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 김은식 청주원봉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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