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실 접고 마흔 넘어 작품활동… 김무하 시인 만나며 현대화 시도
전통 탈피 다양한 색채 가미 눈길… 내년 충주·인사동서 개인전 계획

이상규 작가의 작업하는 모습
이상규 작가의 작업하는 모습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꿈이지만 뜻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이 하던 일을 접고 다른 길로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뒤늦게 뛰어든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빛을 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충주의 한 시골마을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하는 서각작가 미소 이상규(66) 씨는 뒤늦게 서각에 입문했지만 새로운 시도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편집자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서각이라는 예술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이상규 작가의 평범치 않은 인생과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나본다.

서각은 나무 등의 재료에 도구를 이용해 글씨나 문양 등을 새겨 넣는 작업으로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망치로 날카로운 창칼을 두들겨 강약을 조절해가며 글씨와 문양을 새기는 작업이다 보니 창칼 끝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자칫 티끌만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전체 작품을 새로 작업해야하기 때문이다.

신중을 기해 나무조각을 조금씩 파내면서 한 작품을 끝내는데만 길게는 한달 정도가 걸린다.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목재소에 가서 자신이 원하는 나무를 골라 크기에 맞게 자른 뒤 공기가 잘 통하고 나무가 휘지 않도록 층층이 쌓아놓고 충분히 말려야 한다.

이 작업을 하는데만 최소 1∼3년이 소요된다.

이후 사포질을 통해 완벽한 표면작업을 한 뒤에야 비로소 서각작업을 할 수 있다.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서각작가 이상규 씨는 애초 의상실을 운영하다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서각의 매력에 빠져 전업작가가 된 인물이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24세 되던 해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 명동에 있는 국제복장학원에 들어가 의류 디자인과 제작을 배웠다.

국제복장학원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고 앙드레김이 다녔던 곳으로 당시로서는 가장 유명한 학원이었다.

수료 후 그는 아내와 둘이 경기도 부천과 성남 등에서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면서 의상실을 운영했다.

그러나 기성복에 밀려 맞춤옷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결국 운영하던 의상실의 문을 닫고 김포로 이사했다.

당시 성남에서 우연한 기회에 서각을 배웠던 그는 김포에서 전통서각가인 철재 오욱진 선생(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기능보유자)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서각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김포에서 동료 작가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작품활동을 했다.

이후 2006년에 시흥 월곶포구에서 '아르떼'라는 비영리 목적의 갤러리를 열어 문화예술 관련 작가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여기서는 그림과 도자기, 사진을 비롯해 서각 작품을 상시 전시를 하면서 개인 갤러리를 함께 공유했다.

때로는 클래식기타 열린 연주회와 문학관련 시낭송 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또 서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한글 서각을 가르쳤다.

그는 이곳에서 김무하(63·여) 시인을 만나게 된다.

김 시인은 13년 전 우연히 갤러리에 들었다가 이 작가의 서각작업하는 모습에 이끌려 지원군을 자처했다.

그는 이 작가의 전시와 작품 디스플레이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직접 작품 판매에도 나서는 등 서각 홍보를 위한 전도사 역할을 했다.

비영리로 운영하다 보니 비용 문제 등으로 결국 4년만에 갤러리를 정리한 그는 10여년 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에 있는 친한 친구의 빈집을 수리해 홀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와 충주에 정착했다.

천성이 인정 많은 그는 동네 막힌 하수구와 물이 새는 지붕을 고쳐주고 차편을 제공하는 등 이웃 어르신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모시고 있다.

시골집이다 보니 다소 허름하지만 그에게는 작업공간과 창고까지 마련된 훌륭한 아뜰리에다.

서각 작업만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그는 생활방편을 위해 틈나는 대로 일당을 받아가면서 기상장비일을 했다.

하지만 경증치매를 앓고 있는 90이 된 노모의 식사와 목욕 등을 도맡다 보니 지금은 아르바이트마저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비록 배 고픈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이 작가는 원래 한문으로 한시나 반야심경 등을 새기는 전통서각을 했다.

그러다 김무하 시인의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현대서각을 시도하게 됐다.

김 시인의 제안으로 작품에 다양한 색채를 가미하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원래 전통서각 작품은 나무의 색상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그와 달리 그의 작품에는 흰색은 물론, 빨강색과 파랑색, 초록색, 노랑색 등 원색이 가미되지만 전혀 경박하거나 천해보인다는 느낌을 받지않는다.

오히려 조화로운 색상배치를 통해 진부한 느낌을 없애고 작품 전체에 세련미를 준다.

그는 형상화한 한글을 직접 디자인하고 작품에 삽입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때로는 아름다운 싯귀를 넣기도 하고 함축성있고 간결한 언어를 통해 타인과 소통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어린 아이같은 순수성과 자유로움은 물론, 고도의 예술성도 함께 깃들어 있다.

이 작가에게 있어 서각은 나뭇결 속에 자신의 영혼을 조화시켜 새김질해 넣는 작업이다.

그는 2013년 충주 성마루미술관과 2018년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 철재각연전과 한국서각협회 회원전 등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그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내년에는 충주와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가질 계획이다.

이상규 작가는 그의 가장 큰 후원자인 김무하 시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이상규 작가의 서각작품

13년 전 우연히 만나 서로의 작품세계를 공유하게 되면서 자주 소통하다 보니 이제는 소울메이트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전통미술대전 한국화 추천작가인 김 시인은 충주시 대소원면 성마루미술관 인근에 있는 80년이 넘은 고택에 살면서 시를 쓰고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

김무하 시인도 내년에 개인 시화전을 계획하고 있다.

이 작가는 김 시인의 시 '그때처럼'을 서각으로 새겨 선물하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김무하 시인은 "이상규 작가는 무실론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지만 서각을 대할 때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확한 프레임을 갖고 있다"며 "그는 인위적인 것을 거부할 뿐 아니라 조금은 의도적인 측면으로 사람들과 소통의 지름길을 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