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배어든 희생의 흔적들, 향토를 論하다

〔중부매일 정봉길 기자〕"점점 사라져가는 우리고장 이야기가 다시금 흙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될까 걱정입니다"

남한강 향토사연구회장을 역임한 제천시의회 이재신의원.

이 의원은 그동안 제천의 향토사학자로서 많은 활동을 해 온 인물이다.

그의 부친도 내제문화연구회장을 지내셨을 만큼, 이 의원은 제천지역에서 몇 안되는 제천의 향토사학자라 말할 수 있다.

그는 향토사연구를 더 발굴하고, 기록화시키고, 계승시켜야 영원히 회자될 수 있다고 말한다. /편집자

제천은 예로부터 마한의 옛땅이라고 하지만, 삼국의 쟁탈지로 고구려권에 많은 세월을 속해 있다.

중원 고구려비가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고, 제천이 이북말씨랑 흡사하다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근현대사의 격랑속에 제천은 독특한 정신이 싹을 텃다. 바로 의병 정신이다.

의병은 성리학자들이 중심이 돼 일으킨 구국의 항전이다. 그 뿌리는 한수와 청풍강을 중심으로 수암 권상하선생의 제자들이 또아리를 틀고 오랬동안 살아왔고 그 양반유생들이 맥을 이어 면면이 내려와 충청도 양반이라 칭하게 됐다.

이러한 성현들의 의와 기가 발현 된것을 의병으로 보고있다.

이 의원은 제천의병의 정신을 지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평생학습강사로서 의병강의를 시작했고, 의병애인이라는 학술 연구단체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또 제천의병이 동북항일독립운동사의 모태가 된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의회에 진출해서는 5분 발언을 통해 제천의병이 간도로 거지수구의 길을 간 일명 서북행의 답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제천의병의 싹을 자르기 위해 왜놈들이 1907년 제천을 모두 불지르는 만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

당시 뉴데일리 맥켄지 기자도 이제 한반도에서 제천이란 도시는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초토화 됐다.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불에 안탄 지역이 향교가 있는 '교동마을'이다.

용두산의 정기와 독순봉의 맥이 역할을 한것 같다. 실제로 제천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고 땅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지역이다.

이 의원과 '교동민화마을'이 인연이 된 것은 문체부 관광PD로 재직할 때다.

전통미술의 한 장르인 민화를 소재로 한 벽화조성사업을 문체부에 건의했고, 그런 인연으로 지금의 "교동민화마을"이 조성됐다.

초기에는 연 5만명의 방문객이 찾아 올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공예작가님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방을 운영해 수익창출에도 열정을 쏟았던 기억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이 의원.

제천에는 그야말로 역사적 유물과 유적의보고라고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유산들이 참으로 많다.

먼저 불교적인 가치로 보면,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이야기가 묻어있는 덕주사, 미륵사, 용하구곡에 자리잡은 억수리의 신륵사, 경순왕이 권토중래를 꿈꾸었던 보덕암과 보덕굴, 불심으로 몽고족을 물리친 사자빈 신사지, 원랑선사탑비가 유명한 월광사지 등이 월악산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한수재 편액 글씨는 당대 송자라 불리운 우암송시열선새의 자필 글씨이며, 그의 제자 수암 권상하선생이 빼어난 황강에 구곡가를 짓고 정선이 황강구곡도를 화폭에 담았다.

이후 옥소 권섭선생이 황강구곡가를 부르며 자연을 노래한 수십편의 시조를 남겼다. 덕산에는 의당 박세화 선생께서 양재명 유응선 등의 제자들과 함께 중국의 하나라의 태평천국을 재현코자 무릉을 건설했다. 이름하야 '용하마을'이다.

이곳 역시 빼어난 명경지수에 이름을 붙여 노래했으니 용하구곡가이다.

능강에도 역시 취적대등이 있는 능강구곡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옥순봉과 구담봉의 빼어난 경치는 단원 김홍도선생이 화첩에 그려 내었다.

또한 성현김일손 선생과 토정 이지함 선생도 이곳에서 유교적 참선의 도를 닦았다.

그 여파일까! 오늘날 현세인의 지성 도올 김용옥선생 역시 이곳 수산 상천리가 고향이다.

이처럼 우리고장은 유교와 불교적 문화의 보고일 뿐만아니라, 그와 더불어 내려오는 숱한 이야기가 잠자고 있는 두터운 퇴적층과 같은 중량감있는 역사문화의 산실이다.

이 의원은 지역 향토사 연구 발굴 전파에 지자체의 역할이 크다고 믿고 있다.

제천의 많은 역사문화의 보고중에 월란선사탑비가 일제에 의해 한수면 송계리에서 경복궁으로 반출됐다가 지금은 국립박물관 1층로비에 전시돼 있다.

이는 우리의 고유의 문화적 재산이기에 후손들이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

문화재청과 협의를 통해 원래있던 송계의 월광사지로 모셔와야 한다.

만약 이전 및 유지 관리의 어려움이 있다면, 의림지에 역사박물관이 만들어 졌으니 이곳 또한 이전 장소로 대안이 될 수 있다. 빼앗긴 유물은 빼앗긴 역사 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역사 문화적 가치는 유물과 유적외에도 스토리텔링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제천의 1경인 의림지에도 숱한 이야기가 내제돼 있다.

의림도령과 순채낭자이야기, 우륵이야기, 영호정이야기, 정인지와 흙털이언덕, 이법우애국지사 이야기, 2경인 박달재만 해도 천등, 지등, 인등, 삼등산이라~ 천부인(비,바람,구름) 삼부인을 가지고 온 환인과 그의 아들 박달도령인 단군의 이야기.

또 천재단과 배달의민족, 희고 밝음을 추구하는 민족, 백운과 봉양의 지명유래, 몽고와의 항전과 공전이야기, 청풍쪽에는 암행어사 박문수이야기, 왕후열전과 청풍김씨 이야기, 월악산과 영봉이야기, 퇴계선생과 두향이야기, 황석나룻터와 뱃사공이야기 등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내장돼 있다.

이 의원은 "지역의 내려오는 역사 이야기는 지역의 정신으로 자리잡고, 혼으로 각인되는 것"이라면서"정신과 혼이 없는 백성은 육신은 있어도 넋나간 사람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