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12월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사고'을 계기로 산업분야의 안전조치를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의 책임을 더한 법안이다.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 산업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여론무마용 성격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논란이 일었지만 여당의 주도로 법안은 결국 처리됐다.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우리 산업분야의 안전 강화라는 취지에 가려졌지만 이법은 기본적으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은 잘못을 대상으로 하면서 처벌은 달리하고 있다. 사업주에 더 큰 벌을 주는 것인데 형벌체계의 균형을 잃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위헌소지까지 거론될 정도인데 처벌의 요건도 불확실하다. '1명이상 사망' 등으로 된 중대재해의 규정부터 미비하다. 상황과는 무관하게 사고 발생만으로 사업주에게 '과실'이 아닌 '고의' 범죄와 같은 형벌을 주는 것 또한 과하다.

중대한 허점은 또 있다. 사업주가 져야 할 의무 가운데 '안전·보건 관계법령'과 이에따른 '관리상의 조치'가 명확하지 않아 그 대상과 범위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이같은 모호하고 막연한 규정은 법 시행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처벌 강화만을 내세우다보니 처벌 대상마저 제대로 정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명확하게 규정된 법규도 문제가 생기는 만큼 이런 부분은 반드시 시행전 개선이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건설업계가 단체로 보완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법안이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사고발생을 줄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으로는 처벌강화 말고 이룰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처벌과 규제 강화는 단기적, 일시적 효과는 가능해도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금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공직자 부동산 투기의혹도 같은 상황이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결과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중대재해법도 다르지 않은 길이 예상된다.

모호하고 막연한 규정은 명확하게 하면 되고 미비한 점은 채우면 된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 말하는 '처벌만능주의'는 얘기가 다르다. 법을 만드는 이유와 취지부터 바뀌어야 한다. 산업현장의 근로자 안전 강화인지, 사업주 처벌 강화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건설업계에서 내놓은 '전문기관 국가인증제'는 검토해볼 만 하다. '면피성' 방책이 될 수도 있지만 재해예방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할 부분이 크다. 실질적인 효과도 기대할만 하다. 처벌로 현장을 억압하기보다는 개선으로 사고를 막는게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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