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귀로 엮어 이삭을 줍다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도서관, 박물관'으로 불렸던 송백헌 선생의 회고전이 열린다. 대전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전문학관은 올해 첫 번째 기획전시로 1월 고인이 된 송백헌 선생 회고전을 준비했다. 9일부터 열리는 회고전 이름은 '별을 담은 서재'. 대전 최초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계에 등단한 송백헌 선생은 교육자이면서 향토문화와 문중 연구 전문가였고 문학평론가이면서 수집가였다. 간행한 저서만 공저를 포함해 30여권. 대전문학관에 기증·기탁한 자료만 7천여 점에 이른다. 일생을 문학작품 연구와 수집에 바친 송백헌 선생의 생애는 삶 자체가 도서관이다. 전시회는 인간 송백헌, 연구자 송백헌, 수집가 송백헌 등 세 가지 테마로 이뤄져있다. 9일부터 열리는 기획전시를 미리 들여다봤다.
 

문학과 함께한 삶, 인간 송백헌

걸어 다니는 문학 백과사전. 송백헌 선생을 지인들은 그렇게 불렀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을 줄줄이 외며 걸어다녔다.

충북 영동군 심천이 고향인 선생은 1967년 3월 현대문학 평론부문에 '토속신의 미학과 원색적 인간상'으로 추천을 받아 1975년 6월 '새타이어의 반성'으로 비평부문 추천을 완료했다.

대전 문단에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문인은 송백헌 선생이 유일하다. 충남고와 대전교 교사를 지냈고 충북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주임교수를 지내다 1980년부터 2001년까지 충남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전문학관 이은봉 관장은 이번 전시회 이름을 '별을 담은 서재'라고 지은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별은 인간의 꿈, 어떤 희망을 상징하죠. 송백헌 선생님은 대전 지역 인문학적 미래를 위해 많은 헌신을 해오신 분입니다. 우리 문학관에 많은 자료를 기증해 꿈을 키워주셨고 대전 인문학 전체에 큰 희망을 주셨습니다."

전시 첫번째 주제 '인간 송백헌'에서는 선생의 유년시절 이야기부터 생의 마지막 문단 활동까지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할머니로부터 언문을 배우고, 어려서부터 시조 종장을 넉어놓은 종이를 바닥에 늘어놓고, 한 사람이 시조를 초장부터 읽어나가면 여러 사람은 방바닥에 깔린 종장을 찾는 방식의 가투놀이를 즐겼다.

평론계의 원로인 백철 선생이 송백헌 선생의 석사 지도교수, 서울대학교에 근무하며 소설을 쓰던 전광용 선생이 그의 박사 지도교수였는데, 이 점을 송백헌 선생은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선생은 1960년대 현대문학 주간이던 조연현 교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한국의 평론계에 등단했다.

지역을 사랑한 연구자 송백헌

호서유림의 여러 문중(은진 송씨, 광산 김씨 등)에 대해 연구하며 그와 관련된 많은 저술을 남긴 전문가가 또한 송백헌 선생이다.

문학평론가인 동시에 연구자로서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현대문학 중에서도 농민문학을 공부했고 대전시 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으로 대전지역 향토문화를 연구하기도 했다.

지역 연구는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던 송백헌 선생은 지명의 유래를 알려면 그 지역의 집안 문서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선생이 생전에 남긴 인터뷰 일부다.

"호적을 보거나 남의 집 족보를 봐야 합니다. 족보를 보면 할아버지 묫자리가 나와 있는데, 그것으로 유추해 이런 지명은 이런 뜻이구나 하는 식으로 연구를 해야합니다."(송백헌)

유난히 기억력이 좋았던 송백헌 선생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지역호서유림 여러 문중의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대전지역학 연구는 대전에 사는 대전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며 큰 책임감도 갖고 있었다. 그는 지역학을 공부할 때 문학을 같이 다뤄야 하는 이유로 문학이 문화이면서 역사의 시대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디까지나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라는 생전 선생의 이야기는 후배 문학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송하섭 단국대 명예교수는 전시 영상 인터뷰를 통해 "송백헌 선생은 선천적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빛을 발휘했다"고 기억했다.

송하섭 명예교수에 따르면 송백헌 선생은 '기억력이 정말로 놀라워서 대전 지역의 이름, 유래, 산, 심지어는 집, 많은 사람들의 족보를 다 꿰다시피 하고 있어 항상 화제가 풍부했다'.

 

별을 담은 서재, 수집가 송백헌

일평생 문학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온 송백헌 선생은 귀중한 책과 문학 자료를 대전문학관에 기증·기탁했다. 기증 자료만 7천여 점에 이른다. 지금도 그의 서재에는 문학사의 별과 같은 소중한 자료들이 방 한가득 자리하고 있다.

송백헌 선생의 문헌 수집은 지역 역사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송백헌 선생 스스로 문학관을 만들고자 했을 정도로 근대문학 자료들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젊었을 때부터 모은 문학 관련 많은 문헌 자료들을 선생은 대부분 대전문학관에 기증·기탁했는데 그중에는 희귀한 귀중본이 많았다.

백석 시인의 친필 서명이 담긴 시집 '사슴'(1936)은 선생이 대학 시절 대구의 헌책방에서 구한, 우리나라에 몇 권 밖에 없는 귀중한 책이다. 백석이 김영랑에게 주며 "영랑 형에게"라고 사인까지 한 희귀본으로,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대전에서 교사를 할 때는 원동초등학교 근처의 헌책방을 드나들고, 서울에서 석·박사 학위과정에 다닐 때는 동대문이나 인사동의 헌책방을 드나들며 월납북 문인들에 대한 자료를 구했다.

당시 대학교수였던 그는 '대학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월납북문인의 책을 사서 보관할 수 있었다. 대학교수라고 해도 월납북 문인들의 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판매하면 불온서적을 가지고 있다는 낙인이 찍혀 곤란하던 시절이었다. 선생이 깊이 간직한 덕분에 자료들은 시간이 흘러 세상 밖으로 나왔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임화나 김남천, 이태준 등 월납북 문인들의 책을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 등과 연고가 있는 사람들한테 복사를 부탁해 구하기도 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을 어렵게 한 권씩 모을 때마다 송백헌 선생은 스스로 자랑스러움과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것이 몇 백 권이었다.

그 중 한 권이 백석의 '사슴'이었고, 안서 김억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였고, 한설야의 장편소설 '탑'이었다.

 수집가였고, 교육자였으며, 문학평론가였고 문중연구 전문가면서 향토사학자였던 송백헌 선생. 

동화작가인 박진용 전 대전문학관장은 "송백헌 선생처럼 우리 대전에 대해, 향토사에 대해, 또 문중에 대해 이렇게 많이 연구하고 지역 사회의 자연이라든가 인문사회까지 통달하신 분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을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송백헌 선생의 유년 시절 사진과 유품을 비롯해 '진실과 허구'(1989)와 같은 송백헌 선생의 저서 20여 권, 김억의 '오뇌의 무도'(1923), 이인직의 '혈의 누'(1955)와 같은 송백헌 선생의 기증·기탁자료 40여 권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은봉 대전문학관장은 "이번 전시는 송백헌 선생이 수집한 소중한 자료들을 지역의 문학 발전을 위해 기꺼이 기증·기탁한 마음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라며 "기증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백헌 선생 회고전은 8월 22일까지 열리며 16일부터 대전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온라인 전시 영상 감상이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문학관(042-626-5022)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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