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선배 충북도의원

7월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지방자치 부활 30년이 넘어서야 경찰행정 일부가 자치단체 업무에 포함된다. 그러나 내용은 실망스럽게도 무늬만 자치경찰이다. 당초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분리하는 이원화 방안에서 국가경찰 일원화 체제로 됐다. 자치경찰사무도 생활안전, 교통, 경비 등 일부이며 담당 부서를 시·도경찰청에 두고 시·도자치경찰위원회를 설치해 관리·감독하는 기형적인 시스템이다.

자치경찰제 추진을 보며 지방자치의 근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중앙의 획일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지역실정에 맞는 행정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 지방자치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중앙의 재원과 권한이 대폭 이양돼야 한다. 구조상으로는 교육과 경찰행정 등 각 부문이 광역행정체계에 포함된 지방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선출되는 단체장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지방정부를 운영하며 주민의 평가를 받게 된다.

이제 미흡하나마 자치경찰제 시행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런데 충북도가 입법예고한 조례안에 대해 충북 경찰 일부에서 반발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시작부터 논란이다. 경찰 측은 자치경찰사무 범위를 조정할 때 충북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임의규정을 '들어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바꿔 달라고 한다. 또 후생복지 대상 자치경찰의 범위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 경찰청에서 시·도에 보낸 표준조례안이며, 이 표준조례안 대로 하라는 것이다.

조례안에 대해 해당기관은 물론 주민 누구라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정이 제시한 표준조례안은 자치입법권을 도외시하거나 아예 무시한 처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방자치 시행 이후 지금도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중앙부처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때 표준조례안을 내려 보내곤 한다. 하지만 행안부도 자치단체의 고유한 입법권을 보장하면서 침해하지 않으려 애쓴다. 행안부는 표준조례안에 대해 자치법규를 제정할 때 '참고할 예시 안으로서 자치단체의 조례제정권을 기속하는 효력은 없으며 사정에 따라 변경하여 입안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찰청이 자치단체에 표준조례안을 제시하고, 밑에서는 그대로 따라달라고 시위까지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행안부도 아니고 행안부 외청인 경찰청이 지방자치의 주체인 자치단체에 표준조례안을 강제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먼저 경찰청 관할 부처인 행안부에 이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장선배 충북도의원
장선배 충북도의원

자치경찰제는 도민들에게 생활밀착형 경찰행정서비스를 더 많이, 더 잘 제공하기 위한 제도다. 이런 근본 목적이 흔들리면 자치 없는 자치 경찰, 주민보다 조직논리에 함몰되는 조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의 근간이 되는 자치입법권은 철저하게 보장돼야 한다. 지역 실정에 관계없이 중앙의 요구대로 똑같은 조례를 시행한다면, 지방자치가 아니라 중앙통치에 불과하다. 오랜 관행으로 자치입법권을 암묵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표준조례안 제도부터 먼저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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