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눈을 크게 뜬 부엉이가 손을 치켜들고 잔소리를 퍼붓는 모습이다. 잔뜩 찌푸린 얼굴의 화난 표정도 있고, 입을 꾹 다문 채 팔짱 낀 부엉이도 있다. 도깨비같이 그린 그림을 보고 제목이 궁금했다. 김기창 화백이 1960년대 그린 '화가 난 우향'이다.

박래현의 작품을 비장(秘藏)했던 소장가들의 적극적 협력으로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으로 외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탄생 100주년, 박래현 삼중통역자'. 화가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만 각인된 예술가 박래현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전시회다.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표현한 명칭이라고 한다. 영어, 한국어, 구어를 넘나드는 언어통역을 의미하지만 이번 전시의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의 세 매체를 넘나들던 그의 예술세계를 의미한다.

1부 한국화 현대 전시는 독특한 표현과 색감에 매료되었다. 각기 다른 색깔이 묘하게 통일을 이루고 있다. 아기를 둘러업은 엄마, 깜빡 잠이 든 여인처럼 여름날 시장에서 마주친 다양한 풍경이 눈길을 끈다. 먼 데 것보다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작가에게 더 친근한 마음이다. 나 역시 수필을 쉽고, 따뜻하게 쓰고 싶기 때문이다.

부부가 합동으로 그렸다는 '봄C' 앞에 섰다. 강하고 굵게 꼬인 등나무 가지와 연보랏빛 등꽃은 박래현 작가가 그린 뒤, 김기창 화백은 참새를 그리고 글씨를 썼다. 오래된 등나무의 둥치에서 강렬한 힘이 느껴지면서도 꽃과 나뭇잎, 새에서는 가정의 평화 같은 따스함이 있다.

운보는 부인을 왜 부엉이로 그렸을까. 어렸을 때 청력을 잃은 운보는 박래향을 부엉이라고 불렀다. 잔소리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표정만 볼 뿐, 변화무쌍한 얼굴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사랑스럽게 보았을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보니 뿔 난 부엉이도 귀엽기까지 하다.

김기창 화백에 가려진 이름, 우향 박래현. 30평 남짓한 화실에서 칸막이도 없이 그림을 그렸단다. 한 방에 펼쳐지는 두 개의 세계. 신산한 삶에서 그림에만 전념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박래현은 가사에 쫓겨 작품 제작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지 번민했다.

"나의 하루는 24시간으로는 너무 모자라요." 확실히 그녀는 과로했다. 아내, 어머니, 예술가 삼중의 삶은 삼중통역자와 마찬가지로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고 모윤숙 시인은 말했다.

마흔아홉 살, 적지 않은 나이에 떠난 미국에서 판화와 만난다. 새로운 전성기다. 3부, 4부 전시는 화풍이 확 달라진다.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혀 동양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 활용했기 때문이다. 거친 질감과 강렬한 색채를 통해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세계도 표현하였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한국화와 현대미술, 세계여행에 대한 추상이 어우러진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예술이었다. 갑작스러운 병마로 중단된 작가의 삶이 애닯고 미술 세계가 아쉽다. 예술을 통해 만나는 또 다른 세계, 삼중통역자로서 다양한 시도를 한 예술가 박래현 발자취를 본 전시회. 시대를 앞서간 여인, 의지의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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