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내 인생 버킷리스트(Bucket list) 중 하나는 밤하늘에 피어나는 오로라의 환상적인 물결을 보는 것이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가져온다는 여명의 신 아우로라(Aurora). 시시각각 변하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여신의 드레스'란 별칭을 가진 춤추는 오로라를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캐나다 북서부에 있는 옐로나이프는 나사가 선정한 세계최대의 오로라 관측지다. 내 생애 육십이 되는 해 나를 위한 선물로 가슴 떨리는 빛의 마법을 찾아 오로라여행을 떠났다.

구리가 많이 나온다는 오로라 빌리지는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날씨다. 캐나다구스 두터운 방한복을 대여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둔탁한 몸으로 우주인처럼 걸어 다녀야만 했다. 얼어붙은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수 위를 자동차로 달렸다. 온통 눈 덮인 넓은 평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은빛 크리스탈 눈 이불을 덮고 있는 아름다운 한 컷의 그림이었다. 열두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가 눈 쌓인 숲속과 호수 위를 달리는 개썰매를 탔다. 온 몸으로 겨울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모자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들숨 날숨으로 쩍쩍 얼어붙었다. 서리 내린 하얀 머리카락이 마치 러시아 미인 나타샤를 보는듯한 모습에 너도 나도 웃음 지었다.

잡힐 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그 밤. 원주민들이 살던 인디언 텐트 피피에서 따듯한 차를 마시고 메이드 인 코리아 컵라면을 먹으며 태양이 준 신의 선물을 기다렸다. 맑고 구름 없는 날 더 잘 보인다는 오로라. 설원에 울려 퍼지는 감격스런 함성이 '우와! 원더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그 빛은 사람들 마음속에 행복, 사랑, 희망, 충만한 자신감을 선물해 주었다.

별 빛 속에 쏟아지는 빛줄기는 시스루 자락이 흔들리듯 너울너울 순식간에 흩어지고 연신 새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춤추듯 날개 짓하는 천연 색 오로라를 눈 위에 큰 대자로 누워 두 눈과 마음속에 가득 담았다. 요동치며 펼쳐지는 신의 숨결은 오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한다는 그것은 꿈길을 걷는 듯 영혼마저 일렁이는 우주의 신비였다. 빛과 빛 사이 어둠속에서 아리랑가락을 부르고 싶어했던 남편은 미처 하모니카를 준비해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언젠가는 '아리랑의 선율로 세계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연주를 하리라'는 마음으로 다시 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극지방의 팬션에 숙소를 정하고 멤버들 각자 먹고 싶은 것들로 마트에서 장을 봐 한 가지씩 솜씨자랑을 했다. 오븐에 구운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 누룽지 죽. 오징어를 넣은 김치전을 부쳤다. 한 겨울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이 멤버 리멤버' 건배사를 외치며 먹던 김치부침개.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잊혀지지 않는 맛이요 에너지를 주는 추억이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빛으로 밤하늘을 수놓은 자연의 웅장함에 신의 경이로운 솜씨를 찬양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광대한 우주 속에 짧은 찰나의 순간을 살다가는 작은 점 같은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슴 벅차게 행복했던 오로라 여행이 이루어진 것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먼 나라 이웃나라를 걷고 돌아보는 불확실성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감동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기에 나는 오늘 또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쓰며 새로운 꿈을 꾼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