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의 자랑 - 제천의병
우리마을의 자랑 - 제천의병
  • 중부매일
  • 승인 2021.04.20 1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권 마을신문 기자들의 '세상 엿보기'
김승진 시민기자 (제천 덕산면 성암리)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에 있는 마을자랑비. 이 비에는 이 마을 출신으로 천남전투이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주로 우군장 이중봉의 휘하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권용일 선생의 업적이 새겨져 있다.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에 있는 마을자랑비. 이 비에는 이 마을 출신으로 천남전투이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주로 우군장 이중봉의 휘하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권용일 선생의 업적이 새겨져 있다.

같은 충청도라 해도 내가 사는 제천은 충청도의 다른 지역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질을 보여준다. 역사적 환경으로나, 인문지리적인 측면에서 이 지역은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무엇보다 제천사람들의 기질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의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제천의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제천의병은 지속성에서나 항쟁의 치열성과 항쟁 성과에서, 그리고 제천의병이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운동의 발단을 이루었던 점에서 제천 지역은 지속적인 의병항쟁의 중심이었다(세명대 구완희 교수의 함께 읽는 제천의병사 참조). 이렇게 보면 예로부터 제천이 '의'를 숭상하는 곳이란 뜻의 '의원(義原)' 또는 '의천(義泉)'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혹자는 제천사나이의 기질에도 영향을 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제천의병은 제천을 비롯한 사군지역(제천, 청풍, 단양, 영춘)에 지리적, 학문적, 혈연적 연고의 기반을 둔 한말의 의병을 가리킨다. 물론 시기에 따라 영남, 강원, 경기지역, 나아가서는 서북과 해외에까지 확대되기도 하지만 항상 그 근거지는 제천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호좌의진(湖左義陳)과 운강 이강년에 관한 핵심적 자료를 남겨둔 박정수 선생도 "제천은 의병의 처음이요, 마지막인 고장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장병이 제일 많았다"고 단언한 것이다.

제천의병은 1895년 을미년 일본낭인들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시해되고 이어서 조선인의 문화적 자긍심에 치욕을 안겨준 단발령으로 반외세감정이 고조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춘천에서 제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장담 마을로 이주해온 스승 유중교 문하에서 유학을 공부해온 유인석은 사방에서 봉기한 의병들에 의해 호좌의진의 대장으로 추대돼 천하의 의병들을 격동시켰다.

유인석은 맨 처음 제천으로 내달렸다. 제천을 휘어잡은 유인석의 제천의병이 충주성을 향해 진군해 관찰사를 처단하는 등 제천의병의 위용을 떨치자 문경의 이강년, 원주의 이인영·한동직, 춘천의 이소응, 이천의 김태원 등의 의병장들이 제천의병과 함께했다. 이 기세를 몰아 제천의병은 사군 지역은 물론이고 원주·영월·평창·정선·지평 등의 행정기구를 장악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정에 의해 의병이 비도로 몰리면서 유인석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바로 이 순간 의병들이 기차를 타고 만주로 탈출하는 TV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마지막회 장면과 오버랩 된다. 드라마와 달리 그곳에서 일본과 충돌하기를 원치 않는 청나라 관리에 의해 무기를 압수당하면서 도리 없이 의병부대를 해산했지만 제천의병이 해산된 뒤에도 유인석은 요동과 연해주에 의병항쟁의 기지를 건설하는데 열중함으로써 제천의병은 나라 밖 항일 기지를 세우는 첫 삽을 떴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미년 군대가 해산되자 다시 의병들이 제천에 모여 연합 의병부대를 도모했다. 을미년에 명성을 떨쳤던 운강 이강년을 대장으로 추대하면서 호좌의진, 즉 제천의병이 재건된 것이다. 이강년 부대는 우세한 무기로 대응하는 일본군에 맞서 집요한 유격전을 펼쳤다. 제천의병은 이강년이 순국한 이후에도 저항을 그치지 않았다.

이처럼 호좌의진의 전통을 가진 제천의병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을미의병기부터 조선이 망한 이후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의병노선을 버리지 않았다. 제천의병의 지속적이고 끈질긴 기질은 오늘날까지도 지역 주민들의 DNA로 남아 있지 않나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제천의병에는 전기의병기의 유인석, 이춘영, 안승우, 서상렬, 김백선, 박정수, 이조승 등과 후기의병기의 원용팔, 이강년, 윤기영, 김상태, 이명상, 박여성, 김상한, 이만원, 이세영, 권용일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의병장과 무명의 의병들이 있는데 마을마다 세워진 공적비와 운강 이강년 기념관 외벽에 새겨진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제천 덕산면 성암리와 한수면 덕곡리에도 이강년 의병장을 따라 의병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마을자랑비가 세워져 있다.

제천시는 의병정신의 계승을 위해 유중교와 이소응의 영정을 모신 자양영당 내에 의병전시관을 건립하는 한편 시립도서관 부지에 제천의병도서관을 운영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의병정신 고취에 힘쓰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