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온기 갖춘 돌결… '추사 김정희의 벼루'

[중부매일 오광연 기자]3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정통 남포벼루의 장인이 있다. 벼루 만들기로 충남 무형문화재(6호)가 된 김진한(81)씨는 할아버지때 부터 3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정통남포 벼루의 장인이다. 
 
아버지 김갑용씨는 1940년 제도 이전의 인간문화재로 인정받던 남포벼루의 대가로 그의 뛰어난 기술과 줄기찬 노력이 남포벼루의 재인식과 생산에 활기를 불어 넣었음은 물론 보령출신의 많은 벼루장인과 향토사가도 함께 인정하는 바다.  
 
이에 김진한 명장을 만나 벼루와 함께한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김진한씨는 어려서 성주산을 올라다니며 백운사에서 좋은 벼룻돌을 선별해 캐고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며 어떤 돌이 벼룻돌로 가장 뛰어난 것인가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안목을 갖추었다.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전통적인 조각솜씨를 터득한데다가 벼루로서 가장 좋은 석질을 한눈에 알아보는 감식안을 갖춰 그가 만드는 남포벼루는 창의적이며 다양하고 섬세한 조각 기술이 어우러져 오늘날 아름답고 먹이 잘 갈리는 대표적인 한국 벼루로 자리매김했다. 
 
벼루라면 한국사람은 우선 시꺼먼 벼루를 떠올릴 만큼 흔한 것이 보령 남포석 벼루다. 요즘 백운상석은 천연석 그대로를 살려서 만든다.
 
영조에서 현종대에 걸쳐 살았던 실학자 '성해웅'도 "금성이 흩어져 있는 남포석 벼루는 그 덕이 구슬과 같고 한번 숨을 내쉬면 이슬이 맺힌다"고 했다. 
 
지금 보물 547호로 지정돼 있는 추사 김정희의 벼루 세 개중 두 개가 남포벼루임을 보아도 남포석의 석질의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조선조 이후 벼루 공급의 70% 정도로 차지해 온 남포석은 서당의서당벼루에서 부터 조선조의 문화를 주도한 사대부의 문방 필수품으로서의 벼루를 공급해 왔으므로 조선의 문화는 남포석 벼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령 남포의 벼룻돌을 캐내는 주산(主山)은 성주산(聖主山)이다. 
 
보령의 미산면과 청라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성주산은 높이가 680m로 주위에 성태산, 문봉산, 옥마산, 봉화산, 진미산 따위의 자잘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곳은 벼룻돌로 알맞은 수성암(水成岩)지대다.
 
김진한 명인의 벼루는 지난 1986년아시안게임 민예품전, 1988년 서울올림픽 민예품전에 출품되며 진가를 발휘했고, 1988년 충남도로부터 남포벼루 무형문화재 제6호 지정됐다.
 
이어 1996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석공예 직종 대한민국 명장으로 지정됐다. 
 
김 명인은 현재 '전통 한국연개발원' 설립해 고연 재현과 현대 벼루개발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 후배양성을 위해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관을 운영하며 남포벼루의 우수성을 알 리가 위해 이수·전수자들과 함께 지난 2018년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전시를 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시회를 열지 못해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남포석들의 석질을 상·중·하 세가지로 나눈다면 상은 백운상석, 중석, 하석은 잡갱의 돌이다.
 
김진한 명장은 "벼룻돌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돌결이 윤기와 온기를 고루 갖춰 먹을 갈면 먹이 벼루바닥에 찰싹 들어붙는 느낌의 최상(最上)의 돌"이라고 말했다. 
 
가보벼루는 기계제작을 하지 않고 무형문화재 6호인 김진한씨가 직접 세밀하고 치밀한 손조각으로 제작해 대물림 할만한 아름답고 내구성 있는 가보벼루를 만들고 있다. 남포벼루는 백운상석 (흰구름이 들어 있는 강한 돌) 중석, 하석 이중에서 좋은 벼루를 고르는 방법은 백운상석은 두드려보면 쇠소리가 나고 중석, 하석은 둔탁한 소리가 난다. 
 
따라서 강도가 쎈 벼루가 최고의 가치가 있는 상품이다. 
 
그러므로 석질이 약한 중석, 하석으로 무분별하게 대량생산 돼 판매되므로 남포오석의 명성에 이미지 훼손과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남포석 옛벼루에 새겨진 조각은 벼루의 수가 워낙 방대하므로 조각의 다양성도 거의 모든 유형을 망라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만큼 남포벼루에 새겨진 조각의 문양은 한 지방의 특색이거나 단순한 공예의 파원을 넘어서 한국미술의 원형질 내지는 생활정서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청라면 의평리 549에 자리잡은 한진공예는 각종 현대식 기계장비를 갖추고 전통적인 남포벼루의 양식에 현대적인 의장을 가미한 아름답고 실용적인 남포벼루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완비하고 가동중이다.
 
현재 '전통 한국연개발원'을 설립해 고연, 재현과 현대 벼루개발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 부설기구로 벼루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관, 벼루 체험학습장이 있다. 최근에 '한진공예'가 자사소유인 성주산의 연석광구에서 새로 찾아낸 백운상석은 원석 자체에 흰구름 문양이 박혀 있다. 
 
김 명장은  "손글씨를 보면 사람의 품성을 알 수 있고 써진 모양이 정겨워 펜글씨에서 붓글씨에 이르는 모든 글씨를 좋아한다"면서 "붓글씨와 지나온 세월이 무려 50여년이 됐다"고 전했다.
 
혹자는 벼루 돌을 60여 평생 만지며 차가운 돌에 생명을 불어 넣어 귀한 중심에 자리하게 하는 그 작업은 마치 임금님이 입을 어의를 바느질하듯 정교한 절차탁마의 여실한 과정이라고 평한다. 
 
보령지역 내에서 김 명장의 장인정신과 그의 진실한 품격을 널리 이해하고 '보령의 명인'으로 보호해 대내외적으로 문화적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씨는 "남포벼루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라며 "최고의 명품 남포벼루를 만들 수 있도록 후배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팔순을 넘긴 김진한 명장. 그는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지정을 이루겠다는 큰 꿈을 안고 오늘도 벼루에 혼을 불어넣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