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두번째 추기경… 청주교구 28년간 이끌어

28일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신자들이 정진석 추기경의 추모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명년
28일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신자들이 정진석 추기경의 추모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명년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천주교 청주교구 제2대 교구장에 임명돼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끌었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이 말을 남기고 27일 오후 10시 15분 선종했다. 향년 90세.

1931년 12월 서울에서 태어난 정진석 추기경은 발명가의 꿈을 안고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지만, 6·25 전쟁을 겪은 뒤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정 추기경은 1961년 사제품을, 1970년 주교품을 받고 제2대 청주교구장에 임명돼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끌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 임명과 함께 대주교가 됐고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을 지냈다.

2006년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돼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로 추기경에 이름을 올렸다.

정 추기경은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은퇴한 뒤,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서 지내며 저술활동에 매진해 왔다.

정 추기경의 빈소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마련됐다.

28일 새벽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진행된 선종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와도 같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우리들을 품어주셨다"고 추모했다.

28일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신자들이 정진석 추기경의 추모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명년
28일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신자들이 정진석 추기경의 추모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명년

정 추기경은 천주교 청주교구, 증평 초중성당, 음성꽃동네 등 충북과의 인연도 깊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70년 6월 25일 정진석 니콜라오 신부(당시 39세)를 청주교구 제 2대 교구장 주교에 임명했다. 그해 10월 3일 교구민들과 지역 도민들의 환호와 기대 속에 내덕동 주교좌 본당에서 성성식 및 착좌식이 거행됐다.

교구장 주교로서 모토는 'OMNIBUS OMNIA 모든 이의 모든 것!'이었고, 이후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는 자신이 선택한 이 표어대로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려고, 특별한 인간관계에서 온화하고 온유한 친화력을 보여 줬다.

주목할 만한 점은 청주 교구장으로 재직한 28년간 한해에 거의 1권의 책을 썼거나 번역했을 정도로 학자 주교로서의 면모를 보여줬고, 교회법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서 수많은 논문을 학술 잡지에 발표했다.

사회사업 분야에서도 꽃동네(1982년), 자모원을 위시한 사회복지사업, 양업고등학교, 충주맹아·농아학교 등의 교육사업, 그리고 청주성모병원(1998년)과 같은 의료 사업으로 지역사회 내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실천했다.

주교로서 모토였던 '모든 이의 모든 것'처럼 정 추기경은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힘에 따라 마지막까지 모든 이의 모든 것을 실천했다.

28일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주교좌성당에서 신자들이 정 추기경을 추모하고 있다. /김명년
28일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주교좌성당에서 신자들이 정 추기경을 추모하고 있다. /김명년

내덕동 주교좌 성당에도 정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내덕동 주교좌 성당 신자들은 "청주에서 오랜기간 함께 하셨는데 선종 소식을 들으니 많이 안타깝다"며 "주님 곁에서 편히 쉬시길 아멘"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신자는 "초등학교 때 세배 드리러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정 추기경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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