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정년퇴직 후 2년의 시간이 번개와 천둥치듯 지나갔다. 퇴직 후 삶의 무료함과 지루함에 대한 염려는 기우였다. 퇴직 후 일상에도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반영하듯 삶의 역동성은 여지없이 이어졌다. 삶에는 명암과 양면성이 존재하듯 직장생활이 단절된 일상에 자유로운 삶의 선택권이 주어졌다.

나는 지난해 말부터 집 근처에 있는 구룡산을 매일 다녀온다. 1시간 남짓 산행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설치된 의자를 도구삼아 팔굽혀펴기를 한다. 한 차례에 30개씩 200여개를 3개월 쯤 했을 무렵 몸에 변화가 왔다. 말랑말랑했던 팔뚝과 밋밋했던 가슴에 그럴듯한 알통이 생겼다. 알통을 보며 어릴 적에 친구들과 팔뚝의 알통이 누가 더 튀어나오는지를 보여주며 호기를 부렸던 추억이 떠올랐다. 내 몸에 생긴 알통을 눈여겨보면서 아내가 "난생 처음 남자의 근육질 몸매가 느껴진다."며 생소해하면서도 흡족해한다. 살면서 내내 "근력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아내의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못해 알통이 없는 남편으로 살다가 예순이 되어서야 알통이 있는 남편으로 살고 있다.

몸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를 유도하고, 마음의 변화가 몸의 변화를 이끈다. 팔뚝과 가슴에 생긴 알통, 허벅지와 종아리에 생긴 근육의 위력이 나를 눈과 비가 오는 날에도 구룡산에 오르게 했다. 평소 구룡산을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산행을 마칠 때까지 한 사람도 만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의지력이 성취감으로 이어져 초등학교 6년 개근상을 받았을 때만큼 기분이 좋아진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구룡산을 가지 못한 날에는 몸이 개운하지 않고 마음까지 공허해진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러너스 하이를 만끽하고 싶어 운동 중독에 빠지듯, 나는 알통과 근육을 키우고 싶어 구룡산을 산행하는 중독에 빠졌다.

삶의 행복감은 관계의 성숙도와 밀접하다. 관계를 관통하는 심리적인 중심축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관계의 속성에는 질투, 경쟁심, 이기심,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역동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인정욕구를 충족하는데 한계에 맞닥뜨리게 되고, 관계의 갈등을 겪게 된다. 삶의 문제와 관계의 갈등을 통과하지 않는 행복은 없다. 삶의 문제와 관계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정신적 고통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며,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내 안에 있다. 삶의 문제와 갈등에서 오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며 삶의 문제와 갈등의 본질을 통찰하는 힘은 마음의 근육에서 나온다.

알통이 힘의 상징이고, 근육이 건강의 척도라면 마음의 근육은 행복한 삶의 원동력이다. 마음의 근육 중에 으뜸은 '남에게 보이는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잘난 나와 성공한 나'만이 아니라 '못난 나와 실패한 나'까지도 받아들이는 성숙한 마음이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임상심리학자인 토니 험프리스의 질문에 자문자답하는 시간과 실천하는 삶 속에 자존감은 높아진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는가. 다른 사람의 자아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가.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에 반응하고 표현할 줄 아는가.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고자 하는가." 근력운동을 꾸준하게 하면 알통이 생기듯 자존감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면 마음의 근육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마음의 근육은 성숙한 사람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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