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마을신문 기자들의 '세상 엿보기'
박정현 시민기자 (제천 수산면 수곡로)

두무산 측백나무 자연군락지
두무산 측백나무 자연군락지

중앙고속도로 남제천나들목을 나와 우측으로 꺾어 들면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실뱀처럼 구불구불 82번 지방도가 이어진다. 이 도로를 30분쯤 달리면 금성면, 청풍면을 지나 단양으로 향하는 36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 80년대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시골 면소재지가 있다.

제천시 수산면. 2012년 충청북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 될 만큼 시간이 멈춘 듯 한적한 산골벽촌 같지만 청풍호, 옥순봉, 금수산, 자드락길 등 손으로 꼽기 힘들만큼 화려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즐비한 곳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둘러볼 곳은 이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두무산', 면소재지에서 5분 거리도 안 된 곳에 위치해 그저 그런 동네 야산 같지만 이곳이 측백나무 자연군락지로 숲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정은 달라진다.

아는가? 이 숲이 우리나라 최대 규모 측백 자연 군락지이자 유일하게 숲속을 거닐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거기에 측백이 천연기념물1호라는 것. 이 측백숲도 천연기념물 62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을.

숲 들머리. 간단한 안내판을 제외하면 애써 꾸미지 않은 자연스런 진입로가 더 맘에 와 닿는다. 천천히 숲속으로 들어선다. 몇 미터 들어서지 않은데도 청량하고 향긋한 측백향이 온몸을 점령하는 기분이다. 금세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하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어릴적 학교 교실 창밖은 대개 측백 이었다. 그래서 측백은 한편 친근하면서도 한편 화단의 나무로만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런 군락이라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온통 측백이다. 오! 신기하고 신비롭다.

숲속은 평온하다. 나무 군락 사이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좀 좁을 듯 한 오솔길은 가파란 산비탈을 비껴 돌며 평평하게 이어져 유유자적 걷기에 맞춤이다. 나뭇잎이 알맞게 쌓인 바닥은 푹신하고 나긋하다. 내딛는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뚜벅 뚜벅 걷기보다 한발 한발 지긋하게 걷게 된다. 어느 순간 세상은 멀어지고 고요와 적막이 지배하며 몸도 마음도 묵묵해 진다.

왜 '산'이 아니고 '숲'인지, 사색과 명상과 치유의 공간이라고 말하는지 알 법 하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며 30분쯤 걷다보면 측백숲 너머 두무산 전망대 이정표를 맞이한다. 이제 숲이 아니고 산이다. 이대로 돌아서 다시 숲으로 가도 좋고 기왕 나선 김에 등산도 좋다. 산에 오른다. 길지 않은 비탈길이어도 숨이 가쁘고 이마에 땀이 송글 해진다. 두무산 전망대를 내려서면 청풍호가 한눈에 펼쳐지는 자드락길 6코스 괴곡성벽길로 이어진다. 자드락길은 '산기슭 비탈진 곳에 난 오솔길'을 일컫는 말이다. 산길, 들길, 마을길이 어우러진 한적한 길이다. 느긋하게 걸어도 얼추 시간 반이 면 충분하다.

백봉산 마루주막
백봉산 마루주막
백봉산 마루주막
백봉산 마루주막

이 길의 끝에 누구나 들러 본다는 수산의 명소 '백봉산마루주막'이 있다. 그 옛날 화적패들의 산채 였을까? 세상을 등진 화전민의 보금자리였을까? 모습 자체만으로도 옛날얘기가 주렁주렁 열릴 것 같은 주막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시는 한사발의 막걸리는 측백숲을 찾는 이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 세상 어디서 이 맛을 볼 수 있으랴!

어느 때고 마실 삼아 툭툭 털고 측백숲을 찾아보시라. 분명히 반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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