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싱그러운 5월의 향기는 훈풍을 타고 코로나 19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여행을 즐기고 있다. 숲속의 집엔 이른 아침부터 산비둘기 구구거리고 꾀꼬리가 노래를 부른다. 온갖 잡새들이 지저귀는 이집에서 맞는 5월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테크노 단지가 형성되면서 마을 입구 지명을 대표했던 '그림 바우' 소나무가 울창했던 정씨 종산은 발가벗은 민둥산이 되어 간다. 잘생긴 소나무는 팔려가고 잡목들은 종잇장 구겨지듯 구겨져 쌓여있다. 머지않아 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산은 뭉개져 어떻게 변할 것인가. 문암 마을은 절반이상이 빈집으로 어수선하다. 이웃들이 하나둘 떠나버리더니 인심이 흉흉해져서 밤이면 빈집에 보물찾기 하듯 밤손님이 들고 심지어는 애써 가꾼 채소들까지 뽑아 갔다고 밤이 지나면 이야기가 풍년이다.

코로나 19로 문 닫는 식당 주방 살림살이를 몰래 싣고 와서 버렸는지 숟가락과 그릇, 된장을 보글거리고 끓여 손님상에 올랐던 뚝배기들이 너저분하게 폐가 앞마당에 쌓여있다. 부지런하고 힘이 넘치는 젊은이가 사는 집엔 재활용 가능한 물건들로 담을 치고 보도 불럭으로 앞마당을 손질하는가 하면 골동품과 고물 수집하는 이들이 들락거린다.

잘못 되어도 많이 잘못 된 것 같다. 국가적인 손실이 분명하다. 도시계획 정보를 입수한 투기꾼들의 게딱지 같은 집과 창고 이삼층으로 잘 지은 집의 역사는 불과 10년 안팎이다. 멀쩡한 집의 보상이 끝났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거린다. 40여호 주민들은 취락마을이라 하여 헐려지는 집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들을 할 것인지….

우리나라 법이란 것이 아름다운 도시를 창출하고자 가난하고 불쌍한 시민들을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다쓰러져 가는 집이지만 남의 터에 '텃도지' 물고 내 집이라 생각하며 아이들 키우며 희망의 꿈을 꾸며 살아온 날들이 그립고 그립다.

세상은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5월의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갈 곳을 잃고 창공을 나는 새들과 산짐승들도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다. 모여드는 산새들이 숲속의 내 집을 찾으니 허공을 바라보며 반갑게 귀 기울이고 눈인사를 하며 바라본다. 나 역시 머지않아 내 쫓기게 된 신세지만 사는 동안 그들을 벗 삼아 살아가고 싶다. 좁쌀과 들깨 한 바가지 들고 여기저기에 '훌훌' 뿌리니 까치가 반갑게 "깍깍"거리며 내려앉는다. 등이 회색인 제법 큰, 이름도 모르는 새들이 떼로 몰려들어 만찬을 즐기는 풍경이 한폭의 동양화를 닮았다.

여기저기 상추와 아욱 봄채소를 심었더니 나풀거리며 예쁘게 자라고 호박과 울타리 콩은 올라갈 집을 짓는다.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속삭인다. "애들아 사는 날까지 동고동락하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보자고." 행복리더인 나까지 꿈과 희망을 잃는다면 마을 어르신들은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꾀꼬리가 화답을 한다. 무더기무더기 핀 찔레꽃이 향내를 뿌리며 용기를 준다. 희망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푸른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5월을 닮고 싶다. 골목길을 수놓는 장미꽃을 바라보며.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데 코로나 19는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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