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을 하루 앞둔 12일 청주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채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김명년
전동킥보드 관련 자료사진. /중부매일 DB

도로교통법 개정 등 안전 규정이 강화됐지만 관련 교통여건 미비로 전동킥보드의 안전운행 정착은 요원해 보인다. 지난달 13일 시행된 개정안은 주행에 따른 안전에 방점이 찍혔다. 면허, 안전모, 도로이용, 승차인원 등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행조건이 아닌 도로 등 교통여건도 함께 개선돼야 제대로 된 안전대책이 될 수 있다. 당장 킥보드 주행이 가능한 자건거도로의 76%가량이 보행자 겸용이다. 걸어다니기 위한 길인데 어느 곳은 킥보드 운행이 되고, 어느 곳은 안되는 것이다.

킥보드와 관련된 안전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급증하는 사고건수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 2017년 전국적으로 117건이었던 관련 교통사고가 지난해 900여건으로 3년새 8배 정도 늘었다. 매년 2배 가량 증가하는 셈이다. 사고유형도 상황의 심각성을 높이는데 한몫한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사고의 42%가 차량과, 32%는 보행자와의 사이에서 발생했다. 개인형 이동장치인데도 사고 4건중 3건은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최근 4년 가량 대전시의 경우만 따지면 무려 87%에 달한다.

이런 이유 등으로 지난해 12월 바꾼 규정을 5개월만에 다시 고친 것이다. 갑작스러운 개정에 따른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시행과 함께 한달간의 계도기간을 둬 실제 단속은 오는 13일부터 이뤄진다. 결과적으로 섣부른 규제완화로 혼란만 가중됐다. 1년에 10만대가 넘게 팔릴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 제도는 제자리도 아닌 갈 지(之)자를 걸은 셈이다. 일관된 규정에 맞춰 꾸준히 지도·단속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결국 보행자 겸용도로 등의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헛바퀴만 돌았다.

경찰의 단속 강화에도 상황이 바로 개선되기는 어려울 듯 싶다. 우선 적발이 까다롭다. 단속에 불응해 도주하는 킥보드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CCTV나 블랙박스 등 영상을 확보해도 번호판 식별이 안되고, 공유제품 이용시 당사자 특정도 곤란하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행이 가능해 강도높은 현장단속을 해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위치확인 서비스 등을 활용한 사전조치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각종 걸림돌이 도로 곳곳에 깔려있는 우리나라 도로 상황은 킥보드 안전의 덫이 될 수 밖에 없다.

킥보드 사용이야 전국 어디나 비슷하지만 충청권의 열악한 교통문화는 우려를 키운다. 지난해 17개 시·도 교통문화지수 평가에서 충남 16위, 충북 13위, 대전 9위를 차지했다. 규정준수 등 운전행태와 교통안전 등이 최하위 수준인 것이다. 여기에 운행 예측이 어려운 킥보드 특성이 더해지면 상황은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이용 가능한 도로도 정비되지 않았는데 단속과 규제만 강화한다면 엉뚱한 일들이 터질 수 있다. 앞뒤를 잘라낸 이같은 조치는 사고를 부르게 된다. 지금이라도 여러 여건을 두루 살펴보는 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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