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가방 속 지퍼 안쪽에 넣어둔 흰 봉투가 손끝에 걸려 올라왔다. '어머니 유산'이라고 쓰인 글씨가 어머니의 모습처럼 고운 숨결로 다가온다. 속은 다 타고 겉만 남아 새털처럼 가벼웠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한 획 한 획 그려진 힘없는 필체에 어머니의 혼이 느껴져 접힌 봉투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어느새 떨어진 눈물방울이 봉투를 적신다.

몇 년 전 어머니께서는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시골 땅을 팔았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땅이라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팔린 것만도 다행이었다. 이모님과 공동 명의로 되어 있었던 터라 돌아온 금액도 그리 크지 않았는데 그중 일부를 흰 봉투에 담아 우리 오남매에게 나눠 주셨다.

얼마 되지도 않은 금액인데 어머니 쓰시라고 한사코 거부하는 내게 그동안 해준 것이 없어 마음 아프셨다 하시며 기어이 손에 쥐여주며 흐뭇해하셨다. "고마워요 엄마. 잘 쓸게요. 우리 엄마 글씨도 참 예쁘게 쓰셨네 잘했어! 그런데 유산이라는 말이 거슬리고 기분 안 좋아요 유산이 뭐예요 유산이…"

유산이란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간 재물인데 살아계신 어머니가 유산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고운 필체가 적힌 봉투를 여태 버리지 못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요즈음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무엇을 먹어도 체한 기분이다. 어찌 육체뿐이랴, 지나간 시간의 기억으로 들이대는 소소한 일들이 이래저래 후회와 아쉬움으로 올라와서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다. 날씨가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짜증 나고 화가 난다.

문득 우울증이 아닌가 싶어 자신을 체크해보니 원인의 밑바닥에는 어머니와 합의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잘린 탯줄을 잡고 황망해하는 내가 서 있다.

지난 4월 어머니는 이승에서의 모든 끈을 놓아버리고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 가슴 밑바닥에 있던 고향이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다. 벌거벗겨진 나무가 뿌리 뽑힌 채 뙤약볕에서 말라가고 있는 것처럼 마음속에는 마른 먼지만 날린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순간순간 흐르는 눈물을 훔치느냐 마음속은 바쁘다. 대단한 효녀도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던 음식을 먹어도, 어머니가 즐겨 듣던 노래를 들어도, 어머니와 함께 걷던 길을 걸어도 이제는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었다. 흘려들었던 부모님에 대한 대중가요의 가사가 모두 내 얘기 같아 눈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낯설다.

왜 그렇게 못해 드린 것만 가슴에 사무치는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고 어머니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대 민족의 속담 중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은 흔히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전지전능한 신의 본성을 어머니에 비유한 것은 그만큼 모성이 지닌 희생과 가치가 위대하다는 뜻일 것이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너는 그 나이에 아직도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나는 고아인데…" 어느 날 누군가 내게 한 말이다. 이제는 내가 또 다른 그 누군가에게 하게 될 부러운 말이 되고 말았는데 어머니는 어떤 형태로든 그리움 이상을 뛰어넘는 것 같다.

미수(米壽)의 어머니 연세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늘 내 편에 서 계셨던 어머니. 지금 이 순간도 너무 보고 싶다.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뼈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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