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거미줄에 갇힌 아이일까. - 현관문을 열자 널브러진 옷가지와 수북한 먼지, 냉장고 옆 거미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 2칸,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인 그 집은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만 남아있었다. 방인 듯 거실 같은 곳에 아이가 쓰는 듯한 노트북과 교과서 몇 권이 구석에 있었고, 전기 콘센트는 이미 부서져 구멍이 난 채 노출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는 11살 진우(가명)는 낯선 이들을 친절히 맞이했다. 아직 아버지가 안 오셨으니 앉으라며 방석을 내주고 캔커피를 내왔다. 고맙다 인사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마시지 않았다. 아니, 마시지 못했다.

스스로 거미줄을 걷어낸 아이였을까. - 우리 셋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런 집에 사는 진우의 밝은 얼굴과 손님을 대하는 예의 바른 성품에 놀란 눈길이었다. 마침 도착하신 진우의 아버지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진우 아버님은 일흔이 넘은 노신사였다. 우린 다시 눈을 마주쳤지만, 목적을 잊지는 않았다. 진우 칭찬을 시작으로 비대면 학습이 어렵지는 않은지, 진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불편하신 점은 없는지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했다. 함께 방문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정중히 거절하셨다.

거미줄을 친 사람은 바로 우리가 아닐까. - 비대면 학습을 위한 주거환경이 잘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 방문이었지만 우리 일행은 그 집을 나오자마자 다른 토론을 벌였다. 진우는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된 방치된 아이인가 아니면, 거칠지만 아버지의 관심 속에 잘 자란 아이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으나 우린 진우와 진우 아버지의 강점을 먼저 보기로 했다. 곧바로 아이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아동센터를 연계했고, 청소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해 진우가 스스로 청소의 중요성을 알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아이들의 공간은 아이들이 결정해야 한다' - 1996년 열린 제2차 세계주거회의(Habitat Il)의 의제를 보면 적절한 주거란 사생활 보호, 적절한 공간, 물리적 접근성, 안전성, 구조적인 안정성과 내구성, 기반 시설, 바람직한 환경의 질과 건강 관련 요소들, 기본적인 편의시설에서 멀지 않은 입지 등을 의미하며, 이 모든 것이 부담할 만한 적절한 지출을 통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적절함이란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 결정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아이들이 생각하는 적절한 주거에 대해 아이들의 의견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거미줄을 걷어줄 때가 아닐까. - '적절하다'라는 것은 여러 요인에 의해 다르게 결정되지만 아이들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는 '권리기반'이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가져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 성인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그대로 아동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만, 아동은 스스로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모든 활동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성(性)이나 연령에 따라 특별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진우가 거미줄을 스스로 걷어낼 힘을 가진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우리는 '집다운 집'이 물리적 환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간에 대한 집중만큼이나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지역사회의 힘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주거권'은 물리적, 사회적 개념을 모두 가진다. 그래서 거미줄을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거두어야 하는지는 훨씬 더 중요하고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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