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이면 100말씩 팔려… 수레실어 동네별로 배달
탁주 저장탱크·철제금고부터 입국실·주모실까지 보존
정경숙씨 "보은 대추막걸리 개발·공간 재활용 고민중"

회인양조장 전경. /김명년
회인양조장 전경. /김명년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 41-8(중앙리)에 위치한 회인 양조장. 지금은 멈춰 있지만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막걸리를 만들어 내던 곳이었다. 건립연도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1968년도에 시아버지가 인수해 운영해온 회인 양조장에서 함께한 정경숙(60)씨는 이곳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회인양조장 뒤편에 자리한 회인동헌 내아 /김명년
회인양조장 뒤편에 자리한 회인동헌 내아 /김명년

보은 회인은 조선 태종 13년에 현을 삼고 현감(사또)가 부임해 지방 관리가 있던 독립된 지역이었다. 회인 양조장 바로 뒤에는 회인동헌 내아(현감이 기거하던 관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정확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1918년에 대대적 수리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동헌 건물이 없다는 것이다.

홍영의 보은군 문화재팀장에 따르면 회인 양조장 자리나 그 앞에 있는 교회 자리에 동헌이 있었을 것이란다.
 

회인양조장 내부. /김명년
회인양조장 내부. /김명년
회인양조장 내부
회인양조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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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이 있던 자리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는 인산객사가 자리하고 있고 위쪽으로는 사직단이 남아있는 곳은 회인이 유일해 독립 행정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회인 양조장 건물은 오래된 목간판, 갈색 창틀, 흰색 벽, 지금은 지붕을 수리해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수리된 지붕 아래로 목재 골격과 양철로 된 함석 지붕이 오랜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경숙씨가 거름체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경숙씨가 거름체를 들어보이고 있다.

양조장집 며느리 정경숙씨는 보은군 내북면 창리의 정미소집 딸이었다. 1986년 회인 양조장 아들 박세식(63)씨와 결혼하면서 이곳 회인면에 자리 잡았다.

"그 당시에는 정미소 딸과 양조장 아들이 결혼해 주목을 받았었죠. 평소에는 막걸리 50말은 기본이고 장날이면 100말도 넘게 팔렸어요."

35년 전인 1986년에는 직원도 5명 이상 두고 일을 할 정도로 바쁜 곳이었다.

회인양조장 내 우물이 있던 자리
회인양조장 내 우물이 있던 자리

"우리 남편이 구르마(수레)에 막걸리를 실어 동네별로 배달을 했었어요. 그때를 생각해 보면 술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꼬두밥을 훔쳐먹는 사람들, 막걸리가 되기전인 모리미(막걸리가 되기 전 상태를 이르는 말)를 야금야금 먹다가 결국 술이 취해 한 숨 자고 가는 사람들 등 별 사람들이 다 있었죠."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막걸리 공장도 현대화 시설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곳과는 물량부터 차이가 나고, 수지가 맞지 않아 결국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지금은 멈춰있는 회인 양조장이지만 옛 양조장 시설을 거의 보존하고 있다.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탁주 저장탱크와 탁주 가격표, 제성(술을 거르는 곳), 저장실 등이 자리하고 있고 왼쪽에는 사무실 겸 숙직실이 있다.

사무실에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철제 책상과 나무 서랍, 시아버지 때부터 사용해 오던 묵직한 철제 금고, 작은 숙직실에는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브라운관 TV와 난로 등이 놓여있다.

회인양조장 사무실 내 숙직실 브라운관 TV
회인양조장 사무실 내 숙직실 브라운관 TV
회인양조장 사무실
회인양조장 사무실

정씨는 "저 녹색 금고는 100년 정도 된 것"이라며 "한참 번성했을 때는 금고에 현금이 가득했었다"고 회상했다.

사무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균을 배양시키던 입국실, 그 앞에는 전에 사용했던 우물 자리가 남아있다. 또 사입실, 주모실 등 작업 공간이 비치돼 있다.

주모실은 발효균이 농축된 술을 만드는 곳으로 옛날에는 법제상 발효균에 잡균이 들어가면 안됐기 때문에 양조장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했던 곳이다.

사입실은 술을 발효시키는 곳으로 지금은 예전에 사용했던 대형 항아리와 옛 간판만이 이곳에서 했던 일을 증명해주고 있다.

양조장 내부를 지나 바깥으로 나가 건물을 바라보면 형님, 아우처럼 두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곳에도 술을 만들어 보관하던 대형 항아리가 놓여있다. 옆쪽으로는 항아리를 꿰매 사용한 흔적이 있는 장독도 볼 수 있다.

회인양조장에서 사용하던 항아리 꿰멘 자국이 선명하다.
회인양조장에서 사용하던 항아리 꿰멘 자국이 선명하다.

홍영의 팀장은 "건축대장에도 인수시기인 1968년 이후 자료만 나와 정확한 건립 연도는 알 수 없지만 형님, 아우처럼 쌍둥이 건물로 봤을때 일찍 지어졌으면 일제강점기, 늦어도 195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여진다"며 "우물 자리가 건물 안에 있을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여 아우 건물은 나중에 증축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양조장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씨에게는 아직 꿈이 있다.

보은 하면 떠오르는 '대추'를 이용한 대추막걸리를 선보이고 싶다는 것이다.

정씨는 "지금은 나이도 있고 세상도 바뀌어 대량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것은 힘들다"며 "다만 보은의 대표 농산물인 대추를 이용해 보은 대추축제 기간만이라도 대추 막걸리를 만들어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양조장 건물을 그대로 살려 사람들이 찾아 옛 추억에 잠길 수 있도록 공간 재활용도 고민 중이다.

정경숙 회인양조장 며느리.
정경숙 회인양조장 며느리.

건물 앞에 걸려 있는 회인 양조장이라고 써 있는 오래된 목간판을 바라보는 정씨의 표정에는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지금 개발중이라는 대추 막걸리를 조만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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