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올해 6월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이다.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1951년 초까지 3차에 걸쳐 대전형무소 수감자와 지역주민 등 최소 1천800명에서 최대 7천명이 집단학살당한 현장이다.

주한미국대사관 육군무관 밥 에드워드 중령이 1950년 9월 23일 작성한 보고서인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에는 '서울이 함락되고 난 뒤 형무소 재소자들이 북한군에 의해 석방될 가능성을 방지하고, 공산당 우두머리와 좌익극렬분자를 처단한다'는 것이 학살의 명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가해자인 충남지구 방첩대(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형무소 교도관, 지역 경찰 등이 30m에서 180m에 이르는 각각의 구덩이 8곳을 연결한 길이가 무려 1㎞에 달하는 골령골에서 민간인 집단학살을 자행해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 됐다.

당시 M1소총은 형무소 특별 경비대, 카빈은 경찰, 45구경 권총은 헌병대가 사용해 좌익 인사들을 무차별 집단사살했다.

그런데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의 현장 지휘 책임자였던 심용현(대전 2사단 헌병대 중위), 정재환(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송요찬(2사단 헌병사령관, 대령) 등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우대받아 부와 명예를 누리며 행복하게 잘 살다가 죽었다. 반면에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유가족들은 오랫동안 좌익의 집안이라는 세상의 오해와 차별로 숨죽이며 상처를 쉬이 드러내지 못했다.

지난 2007년에 와서야 관련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진실화해위원회 주도로 골령골의 좌익인사 유해발굴을 해서 34구를 발굴했고, 2015년에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이 18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2020년에는 대전 동구청과 공동조사단이 234구의 유골을 수습했다. 그런데 약 7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 중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508명에 불과하다.

전미경 유족회장은 지난 2021년 4월 22일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산내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 위령제를 올렸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위령제 추도사에서 희생자 유해 발굴과 평화공원 조성을 적극 지원키로 약속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때늦은 감이 있지만, 국가·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가 협력하여 국가의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학살 진상을 파악하고, 가해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며, 피해자에게는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념·인권·안보·평화통일 교육 강화, 국가의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다각적인 보훈정책을 마련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와 통일국가를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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