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최근 무예계에 수박 논쟁이 뜨겁다. 여기에서 수박은 여름에 먹는 수박이 아니라 무예 수박(手搏)을 말한다. 옛 문헌에는 손으로 벽을 치니 파묻히고 서까래가 흔들렸다고도 하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았다는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한민족대백과사전에는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수련을 하는 한국 전통의 맨손무예'로 정의하고 있으며, 수벽치기, 수박(手拍), 수벽타(手擘打)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전라도 여산의 작지마을에서 해마다 7월 15일 백중이 되면 충청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수박희(手搏戱)를 하여 승부를 겨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제의 관료들과 수박(手搏)에 능한 무인을 일본 조정에서 초청하여 일본의 무술인과 상박(相搏)하게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민족체육으로서 수박, 택견, 날파람 등을 평소에 신체를 단련하여 유사시에 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무예로 보고 있다.

국내 많은 맨손 무예들은 그 근원을 수박(手搏)에 두고 있다. 특히 해방 이후 태권도 형성기에 태권도 역사를 과거와 연결하는 고리에 수박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들과 지금의 태권도가 어떤 관계이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중국 수박(ShouBo)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미 슈보우는 경기화가 되었고, 국제연맹을 갖추며 해외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수박을 스스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인들에 의해 프랑스에 국제연맹이 창립되었고, 국제스포츠계에서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태권도 종주국설을 이야기하는 중국무예계의 주장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중국 수박은 무형유산이나 무형문화재로 등재되고 있다. 2017년 산시성 성급(종목 지정), 2018년 산시성 진중시 3인(전승자 인정), 2019년 양소봉 성급(전승자 인정), 2021년 2월 신핑시 무형문화재 (종목지정 공고) 등을 보더라도 최근 중국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우리는 어떠한가? 현재 국내에서 수박은 민간에 의해 연구되며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수박의 움직임과 우리 정부의 무관심에 국내 수박협회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협회는 정부에 건의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정부가 14년째 잠을 재우고 있는 전통무예진흥법만 운운하고 있다. 전국의 광역자치단체들과 기초단체들도 전통무예진흥 조례를 제정하고 있지만, 정부의 무예 지정이 늦어지면서 적극성을 잃고 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이런 와중에 최근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태권도 시장과 태권도 종주국설이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문화공정에 수박이 활용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중국 산시성에서 지정한 수박은 진한시대를 그 기원으로 하여 각 지역으로 전해졌고, 고구려와 백제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우리 무예사가 중국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은 우리 무예사가 반쪽이 될 지경이다. 이런 마당에 지금 일고 있는 중국의 수박공정은 200여국 넘게 진출하고 보급된 태권도의 정체성까지 흔들 위기다. 그들은 수박을 중국문화권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전통무예진흥 정책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할 혜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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