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해자 추락으로 사고 인지 못했을 가능성" 인정
처벌불원으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적용도 불가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A(70·여)씨는 지난해 9월 24일 오후 8시 50분께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한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무언가에 부딪히는 충격을 느낀다.

졸음운전을 하던 탓에 그는 자신의 차량 조수석 유리와 보닛이 파손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사고 사실을 인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고원인은 알 수 없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이었던 탓에 주변을 살피는 것이 쉽지 않았다. A씨는 '고라니를 쳤나보다'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뺑소니 용의자로 경찰조사를 받게 된다. 사람을 차로 친 후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한 혐의다. A씨 차와 부딪힌 것은 고라니가 아닌 피해자 B(50)씨였던 것이다. 당시 B씨는 사고 충격으로 가드레일을 넘어 경사지로 추락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 3월 A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사고현장에 남아있던 B씨의 슬리퍼, A씨의 차량 블랙박스에서 확인된 B씨(사고 당시 도로 갓길을 걷던 모습) 등이 근거다. A씨가 사람을 차로 쳤음을 충분히 인지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청주지법 형사5단독 박종원 판사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판사는 "B씨가 가드레일 넘어로 굴러 떨어져 흔적을 찾기 어려웠고, 슬리퍼 역시 이미 버려진 것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졸음운전 중이라고 주장하는 A씨가 사고가 발생할 당시 사람을 들이받았음을 인지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과거 A씨가 고라니를 들이받은 경험이 있는 점', '고작 600m 떨어진 지점에 주거지가 있어 인명피해 사고 시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점' 등도 근거로 들었다.

이처럼 재판부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죄가 안 된다고 판단하면서, 이 사건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죄만 성립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A씨가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고, B씨가 A씨로부터 1천만원을 지급 받은 후 처벌불원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마져도 불가능해 졌다.

박 판사는 "이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6호(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죄를 논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가 있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가 철회되었을 때)에 따라 공소기각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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