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중에 가장 넘기힘든 보릿고개'
'고개 중에 가장 넘기힘든 보릿고개'
  • 중부매일
  • 승인 2021.07.0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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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학교 명예교수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제한을 많이 받는 요즘과 같이 시국이 엄중하다고 하여 시간이 정지되거나, 계절이 서서히 바뀌는 것이 아니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에 이어 하지(夏至)를 지나 소서(小署)를 앞두니 마음이 스산하고 피폐해진다고 해도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옛날 입하부터 하지까지의 기간은 가을 추수로 쌓아 놓았던 곡식이 바닥나서 심각하게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하던 때였기도 하였다. 보통 5월 20일 경 드는 '소만'이 되어야 곡식의 싹이 터서 본격적으로 생장하고, 6월 5일 경 드는 '망종'이 되어야 주식인 벼농사가 시작되어 쌀을 얻으려면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하니 믿을 것은 하지 때 거두어들이는 보리와 감자밖에는 별로 없었다.

지금이야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음식이 남아돌고, 살을 빼려고 굶는다고 하지만 50, 60년 전만 하더라도 '고개 중에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로 시작되는 유명가수의 노래 '보릿고개'가 요즘도 유행하는 것을 보면 '한 많은 보릿고개'가 몇 몇 집에서만 넘기 힘든 고개가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맥령(麥嶺)이라고도 불렀던 보릿고개가 극에 달하는 5월이 되면 왕실이나 종친, 관청에서는 구휼미(救恤米)를 풀고, 인품 좋은 부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는 미덕을 베풀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부자'로 불렸던 경주의 최준 선생인데, 그 집안에는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있었다고 한다. 공주에서는 구휼과 관련한 청백 선정관(淸白 善政官)의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752년에 뱃사공과 백성들이 성의껏 쌀과 보리를 모아 공주에서 충청도관찰사를 이임하고 떠난 이익보 선생의 공적을 사모하여 매우 큰 사적비를 세웠는데, 그 비문(碑文)에 '백성을 마치 다친 사람을 돌보듯 하고 어려운 사람을 구휼(救恤)하였다'고 적혀있다.

'관청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원근의 소(訴)를 지체 없이 처리하고 죄인이 가난하여 변제할 수 없을 때는 정액(定額) 또한 감해주니 이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정령(政令)이요 아직껏 들어보지 못한 인정(人政)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서슬이 시퍼럴 때도 이런 미담이 많이 있었기에 보릿고개의 춘궁기에도 떡을 만들어 주위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그네 뛰고 씨름을 즐기며 하루를 즐겁게 지내는 단오(端午)와 같은 명절 풍속을 두었던 것 같다.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학교 명예교수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학교 명예교수

'사랑만이 남는다'는 시집을 낸 나태주 시인이 "예쁘지 않아도 예쁘게, 좋아하지 않아도 좋게 봐주는 그런 게 사랑이 아닐까 싶다"고 했듯이, 코로나19로 인하여 지칠대로 지치고, 피폐하고 가난한 마음 속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는 바로 요즘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따뜻한 사랑이요, 포근한 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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