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역주민들의 청구로 추진되는 '생활임금 조례' 제정이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충북도의회가 8일 개회된 제392회 임시회 회기중에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럴 경우 지난 1월 충북도내 노동단체가 도민 1만3천명의 서명을 받아 제정을 요청한 지 6개월여만에 통과되는 셈이다. 주민청구에 의한 조례 제정인 만큼 빠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큰 이견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진행속도가 양호한 편이다. 사용자 격인 충북도와 노동계간의 이견을 도의회에서 조율한 점이 눈에 띈다. 나름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보여진다.

노동계에서 조례 제정에 애를 쓰는 생활임금은 근로자의 여유있는 생활을 위해 물가 상승률, 생계비 등이 고려된 임금이다. 통상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에서 책정되는데 조례가 제정되면 지자체 소속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는다. 다만 최저임금과 달리 민간기업 등에는 적용이 안되며 용역이나 공사 수주 등 간접 고용의 경우 문제가 된다. 공공기관의 일을 하는 민간업체까지 적용하면 세금으로 업체를 지원하게 돼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한 용역·공사를 수주하지 못한 업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이같은 난제 때문에 충북도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무엇보다 직고용이 아닌 민간업체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면서 이를 요구하는 노동계와 갈등을 빚었다. 도의회의 논의도 진척을 보이지 못해 지난 6월 회기때 심사가 보류되기도 했다. 이후 의회 주관으로 여러차례 간담회가 열리고 이견 조율로 이번 임시회 처리가 가시화됐다. 여기까지는 주민 청구와 의회의 중재 등 바람직한 모양새다. 하지만 조율에도 불구하고 잠재된 문제가 걸러지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돼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논의 과정에서 충북도가 밝힌 대로 공공기관의 생활임금 적용은 민간업체에 직결된다. 당장 임금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도 임금이 급격히 상승해 경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는 기업들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용역이나 공사를 수주한 업체에서는 일률적이지 않은 잣대로 임금을 다뤄야 한다. 근로자들은 그들대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결국 관련 업계의 전반적인 임금인상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에서 생활임금 조례 제정에 적극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도의회는 조례 제정을 놓고 전국 17개 시·도 대부분에 조례가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많은 지역이 동참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추진의 명분은 된다. 그러나 이는 착수의 당위성은 될지언정 검토와 고민을 건너 뛸 까닭은 되지 못한다. 내용을 보완해야 하고, 예상외의 파급력 등 고려할 것이 더 있다면 접근을 다시해야 한다. 서둘러 조례를 통과시킨 뒤에 간과했던 논란이 불거지고 쉽게 봤던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 최소한 주변에서 이를 받아들일 준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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