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전화를 찾았다. 이른 아침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든 진동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부재중 전화 알림메시지 몇 건과 읽지 않았음으로 표시되어 있는 문자메시지가 와있다. 최근 사건을 위임한 의뢰인의 다급함이 묻어났다. "확인즉시 통화요망"

출근하며 전화할 요량으로 아침식사를 거른 채 후다닥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차를 어디다 두었나…' 차 키(key)를 아무리 눌러도 '빵빵'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날 음주를 한 까닭에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재중 전화 알림의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며 택시에 올랐다. 전날 오후에 보낸 자료를 검토했냐고 묻는다. 분명 어제 저녁에는 약속이 많이 잡혀있어 당장은 볼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 한듯한데….

본인이 직접 설명하면 빨리 이해할 수 있으니 사무실로 지금 오겠다고 한다. 오후에 재판이 수건이 잡혀있어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고 본인 사건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보아도 된다고 설명했으나 막무가내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순간 택시 룸밀러를 통해 나를 힐끗 쳐다보는 기사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변호사님이신가 봐요?" 절묘한 타이밍. 택시 기사님은 '떡 본 김에 제사지낼 마음'을 먹은 듯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질문지옥문이 열렸다. 기사님의 끝없는 질문공세에 시달리는데 차창 밖의 풍경이 어쩐지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다.(기분 탓인가?) 지나 갈만도 한 교통신호도 선제적으로 지키시는 것 같다.

운전보다 질문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느낌이 맞았다. 우회전을 해야 하는 지점에서 직진을 해버리셨다. 기사님은 법원 반대쪽도 목적지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그 곳에 내려 걸어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오히려 상담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을 했지만 결국 평소보다 이삼백원 가량 더 나온 택시비를 지불했다. 한참을 걸어 회사에 도착했다. 격정에 휩싸인 의뢰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뢰인은 자료 설명에 앞서 이 재판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오래도록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처지 비관에까지 이르렀다. 재판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위로를 하면서 자료에 관한 설명을 유도하였으나 결국 상대방의 행실에 대한 비난을 십여 분 더 들은 후에야 비로소 자료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의뢰인은 돌아가면서 후련한 얼굴로 '변호사님을 만나고 나면 힐링이 된다'며 칭찬했다. 정신적 힐링보다는 법적으로 납득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예정에 없던 힐링타임을 갖은 탓에 오후재판을 준비하느라 점심식사를 건너뛰었다. 틈틈이 십 수통의 전화를 받았다. 본인에게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이혼을 원했던 분에게는 잘못한 쪽에는 이혼청구권이 없다고 설명해 주었고, 미운 사람에 소송을 제기하여 곤란하게 만들고 싶다는 분께는 재판은 그렇게 악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설득하였으며, 저리로 돈을 빌려주겠다거나 좋은 비즈니스 제안 전화는 상담원이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그냥 거절하고 끊었다.

그 밖에 인터넷만 검색해도 나오는 서식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검색방법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인데 당신의 은행계좌가 범죄에…'라는 전화에는 그냥 '내가 검사'라고 윽박지르고 끊어버렸다. 재판이 임박했을 무렵 안부전화를 했던 친구는 괜히 나에게 욕을 먹었다. 실없는 농담의 끝에 '심심해서 뭐하나 궁금해서 전화해봤다'는 말이 왜 이리 귀에 거슬렸는지 모르겠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오후 재판을 마치고 나니 부재중 전화 여러 통이 쌓여있다. 확인전화를 모두 한 후 겨우 숨을 돌리고 보니 해가 뉘엿뉘엿했다. 아침에 깜빡한 영양제를 먹었다. 오늘의 첫 끼니였다.

간에 좋다는 밀크시슬약, 먹은 날과 안먹은 날이 다르다는 종합비타민, 철새의 지구력의 원천이라는 옥타코사놀, 면역력을 증강시켜준다는 홍삼제품, 장건강을 지켜준다는 유산균을 한 뭉치 만들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끼니를 이렇게 귀한 영양제로 대신하니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운수가 참 좋은 날인 것 같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