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7~8월은 휴가철이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직장인의 올 여름휴가 기간이 3.7일로 집계했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는 직장인 42.2%가 여름휴가를 간다고 밝혔다. 예년보다 기간과 희망자 감소는 코로나 19 때문으로 보인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19가 일상생활은 물론 여름휴가를 망쳐놓은 것은 분명하다.

이 즈음은 일 년 가운데 가장 더울 때다. 무더위에 작업능률이 떨어진다. 일정 기간 작업이나 근무에서 벗어나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하자는 취지가 휴가다. 휴가는 '쉰다. 편안한 상태로 들어가다.'의 휴(休)와 '느긋하고 여유 있게 지내다, 틈, 겨를'의 가(暇)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어디서 휴가를 보내야 휴가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일단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은 희망 휴가지로 63.6%가 바다를 택했다고 발표했다.

'휴(休)'는 '사람 인(人)'과 '나무 목(木)'으로 이뤄진 회의 문자다. 사람이 그늘진 나무에 기대고 앉아 편안한 상태로 쉬는 모습이다. '休'의 '나무 목(木)'은 한 그루가 아닌 복수다. '가(暇)'는 '날 일'에 '빌린다'는 말이 더해진 합성어로 '날을 빌다. 날을 잡다'는 뜻이다. 이 의미대로 보면 휴가는 며칠 전부터 특정일을 정해 거주지를 떠나 숲에서 안락하게 쉬는 일이다. 휴가지는 나무의 집합체인 숲과 산, 계곡이다. 요즘 피서지로 바닷가 해수욕장을 많이 찾지만, 원래 피서지는 '산'이었다.

왜 휴가 장소가 모래가 많은 바다가 아닌 나무가 많은 숲이어야 했는가? 한마디로 숲의 기능 때문이다. 숲은 인간과 관련해 무수한 유익 기능을 지닌다. 그 유익 기능의 하나가 '피톤치드(phytoncide)'다. 피톤치드는 '식물'을 뜻하는 'phyton'과 '죽이다'의 의미인 'cide'와 합성어다. 1943년 러시아 생화학자 보리스 토킨(Borris P.Tokin)이 처음 사용했다. 나무 등 식물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박테리아, 곰팡이, 해충 퇴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통틀어 일컫는다. 강력한 항균 효능을 지닌 식물성 물질이다.

피톤치드는 인체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면역세포 NK(natural killer cell)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피톤치드는 혈압을 낮추고 신경계에 영향을 줘 긴장감을 덜어 심리 상태를 안정화한다. 면역력 향상에 안간힘을 쏟아야 하는 코로나 19 상황에서 자주 접해야 하는 물질이다. 물론 일부에서 피톤치드가 알레르기 유발 등 부정적 연구도 없는 것은 아니다.

피톤치드와 인간의 상호작용은 삼림욕이란 단어에서 확인된다. 한자어로 '森林浴'이다. 사전적 의미는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숲속을 걷거나 머물러 있는 일, 혹은 치료나 건강을 위해서 산책을 하거나 온몸을 드러내고 숲의 기운을 쐬는 일 '이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피로나 감기는 숲에 머물러 있으면 낫는다고 하여 삼림요법이 성행한다.

한자어에는 나무 5그루가 있고 물 수(水)가 포함되어 있다. '나무 사이에서 물로 씻는다.'는 의미다. 물이 없는데 물로 씻다니? 여기서 물이 바로 공기와 함께 피톤치드다. 피톤치드를 흡입하고 온몸에 쬐는 일이 삼림욕이다. 숲속을 걸으면 기분이 상쾌하고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다. 목욕(沐浴)은 목욕탕에서 물로, 산림욕은 숲, 삼림욕장에서 피톤치드로 하는 것이다.

우리 옛 사대부들의 피서법이 참 특이했다. 즐풍(櫛風)과 거풍(擧風)이다. 즐풍은 이러하다. 동남풍이 부는 날 산에 올라 타인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그늘진 나무 아래 앉아 상투를 풀어 머리를 풀어 헤친다. 손가락이 빗이 되어 머리카락을 헤치며 빗질했다. 모발 속으로 바람과 햇살이 통하게 했다. 거풍은 좀 민망스러운 피서법이다. 그늘진 나무 아래서 하의를 벗어 하체를 하늘로 향해 드러내놓은 채 누워 바람과 햇살을 쐰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바람은 찌든 땀으로 인한 악취를 날려버렸고, 햇살은 모발과 피부에 기생하는 각종 유해균을 살균했다. 이 바람과 햇살에 사대부들이 즐긴 휴가의 비밀병기가 있었다. 피톤치드다. 물론 그들은 즐풍과 거풍을 거치면 왜 목욕한 것과 같이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개운한지 몰랐다. 해보니 그러해 즐풍과 거풍이 사대부 사이에 소리소문없이 퍼졌다. 물은 육체를 청결하게 하지만, 피톤치드는 육체는 물론 마음도 청결하게 한다. 선조들의 슬기가 아닌가 싶다.

휴가는 본래 의미대로, 아니 면역력을 강화해 코로나 19 방어를 위해서라도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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