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승환 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예술평론가

화가 김재관의 55년 인생은 무슨 색일까? 산뜻한 노랑? 강인한 검정? 아니다. 빨강과 파랑이다. 청주시립미술관 2층에는 화가 김재관의 작품 '운명(Destiny 1970-1)'이 전시되어 있다. 홍익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빨강 원색의 이 작품에는 기하학적 추상과 함께 55년을 보내게 될 김재관의 운명(運命)이 담겨 있다. 격정의 색 빨강으로 화가의 삶을 살고, 논리의 색 파랑으로 교수의 삶을 산 55년은 무겁고 아름답다.

김재관은 1967년부터 2021년까지 정확하게 55년간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운명을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 것이다. 그 추상기하학의 삶은 직선이었다. 화가가 주로 사용하는, 직진하는 직선과 채도 높은 원색은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마음의 고뇌를 표현한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추상화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non-representational). 김재관은 일찍이 사실 재현을 떠나 추상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대상이 없고(non-objective), 구체적 형상이 없다(non-figurative).

한국 추상회화의 대가 김재관은 운명을 걸고 색과 선을 사유했다. 크고 작은 작품세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원색과 직선 안에서의 변화다. 원색과 직선을 놓고 벌이는 사투 속에서 관계 연작이 나왔고, 입체의 큐브가 나왔고, 격자 그리드(grid)가 나왔다. 그러므로 김재관의 원색과 직선은 무수한 아픔이 담긴 고뇌 그 자체다. 평생에 걸친 치열한 사투 속에는 환희, 격정, 희망, 평온의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절망, 패배, 좌절, 애수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작품은 좌절의 결실이다."

직선은 현실에 실재하지 않는다. 직선은 마음이 만든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 3차원을 평면사각의 2차원 캔버스에서 구현하려면 원근, 명암, 대상, 색깔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김재관은 원근을 없애고, 시공간을 압축하고, 대상을 해체한 다음, 단순한 직선과 순도 높은 색으로 시공간을 압축한다. 그러면 3차원 현실의 데카르트 좌표 [x,y,z]가 2차원 캔버스의 김재관 좌표 [x,y]로 바뀐다. 이런 운명적 작업은 본질이자 실재인 빛을 향한 여정이다.

김승환 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예술평론가
김승환 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예술평론가

김재관은 우주의 근원인 빛을 분해하여 소리와 색을 얻고 직선과 면(面)을 담는다. 이때 모든 것은 빛과 함께 블랙홀 [x]로 응축된다. 그 자리에 '빛과 색 21-1234' 연작이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레비치, 몬드리안, 피카소, 잭슨 폴록, 도날드 주드 등 많은 화가들이 2차원 평면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실험했지만, '빛의 시공간'을 추구한 것은 김재관뿐이다. 1967년 '추상 67-1'에서 출발한 그의 추상기하학은 '빛과 색 21-1234'에 이르러 빛이 연출하는 시공간에 근접해있다. 이것이 화가 김재관이 도달한 운명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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