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일주 공주문화원장

이일주 공주문화원장
이일주 공주문화원장

올해는 7월 24일에 닿는 음력 6월 15일은 우리 겨레가 즐겼던 명절인 '유둣날'이다. '유두(流頭)', 또는 '유두절(流頭節)'이라고도 하는 유둣날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달이 가장 크게 떠오르는 보름날(음력 15일)이 기운이 왕성하다고 믿었고, 방향으로 볼 때는 동쪽의 원기가 가장 강했다고 믿어 일 년 중에 가장 무더운 복(伏) 중에 든 음력 6월 보름날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했다고 한다.

이런 풍속을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라고 하였는데, 오랜 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간단히 줄여서 '유두(流頭)', '유두절(流頭節)', 또는 '유둣날'이라고 불러 온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부채에 의존하던 옛날 농경시대의 삼복더위가 얼마나 무더웠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냉장고도 없었던 시절이니 음식을 보관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먹을 곡식이 부족하여 지독하게 배고팠던 보릿고개를 하지(夏至; 양력 6월 22일 경) 때 수확한 감자와 보리, 밀로 간신히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겪는 무더위였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또 이때는 지나가는 애기 길손으로부터도 힘을 빌릴 정도로 일 년 중 농사 일이 가장 바쁜 때라서 기력이 바닥날 때였다.

바로 이런 때 드는 날이 유둣날이었으니 어찌 명절이 아니었겠는가?

옛날 유둣날에는 새로 얻은 햇밀가루로 만든 국수와 떡, 제철 맞은 참외와 수박으로 조상과 지신(地神, 땅신)에 유두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하면 나쁜 악귀를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또 유둣날에는 이웃과 덕담을 건네며 음식을 서로 주고받아 나누어 먹었다.

밀가루를 오색으로 물들여 구슬 같은 모양으로 만든 유두구슬을 세 개씩 색실에 꿰어 몸에 차거나 문에 매달면 재앙을 막는다고도 믿었다.

'다음백과'에 따르면 특히 유둣날에는 '유두국수'라고 하여 햇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닭국물에 말아먹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과일도 귀할 때라서 참외밭에 가서 참외 줄기에 국수 가락을 걸치면서 "외가 주렁주렁 열리소"하고 비는 외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면면히 이어 내려온 유둣날의 아름다운 풍습을 여기에 모두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더구나 지금은 무더운 한여름에도 냉방병을 걱정하는 세월이 되었고, 냉장고에 든 음식물이 상해 나갈 정도로 풍요로운 세태인데, 유둣날의 세시풍속을 그대로 이어 나아가자는 말을 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다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했듯이 우리 주변에는 고령화 시대에 혼자 외롭게 보내는 독거노인이 많고, 아직도 끼니를 거르는 결식아동들이 있으며, 코로나와 관계없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웃과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형제, 부모 자식 간에 소송을 불사하기도 하고, 동료 간,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유둣날이면 그 의미가 더 더욱 크겠지만, 유둣날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부터 먼저,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했던 분에게 전화 걸어 시원한 콩국수라도 나누어 드시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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