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경화 충북도 농정국장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 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해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 서문이다. 농민독본은 독립운동가 이전에 농민운동가였던 매헌이 1927년 농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저술한 야학 교재다. 매헌은 '사람이 먹고사는 식량품을 비롯해 의복, 주옥의 재료부터 상업, 공업의 원료까지 농업생산에 기대지 않는 것은 없다'며 농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세상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국내 논과 밭의 경지면적은 2012년 173만㏊에서 2019년 158만㏊로, 최근 7년간 매년 여의도 면적(290㏊)의 수십 배에 달하는 2만여㏊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문제는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사를 짓겠다며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한 농지를 매입한 뒤 땅의 용도를 바꿔 차익을 남기는 수법이다.

이에 충북도는 다음달 1일부터 11월말까지 4개월간 도내 11개 시·군 전역을 대상으로 '2021년 농지이용실태조사'에 나선다. 올해 실태조사는 최근 LH 직원 투기사태 등에서 농지 부당 소유의 심각성이 드러남에 따라 예년보다 한 달 앞서 추진한다.

조사대상은 신규 취득 5년이내 농지에서 올해는 최근 10년 이내 관외거주자가 상속 또는 매매로 취득한 농지와 농업법인 소유농지로 확대했다. 특히 농업법인 소유농지는 농업경영 여부와 업무집행권자 중 농업인 비중, 농업인 등의 출자한도 등 농지 소유요건을 중점 조사한다.

또 농지법 위반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농막 건축과 성토, 태양광 명분 아래 농업진흥지역에 발전설비를 설치한 농업용시설(축사·버섯재배사·곤충사육사) 등도 전수조사한다. 조사결과 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청문절차 등을 거쳐 행정조치에 나선다.

정경화 충북도 농정국장
정경화 충북도 농정국장

농지가 부동산 투기에 이용되는 현실은 '농사가 천하의 대본'이라는 매헌의 가르침을 모독할 뿐더러 가슴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농심(農心)을 멍들게 한다. 쌀의 한자(米)가 뜻하듯 한 톨의 쌀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이 무려 88번(八+八=米)이나 필요하다. 농지의 공공성 유지를 위한 농지 질서 확립은 우리 국민의 인식 제고로 완성된다.

천하의 대본인 농지는 첨단 IT시대에도 여전히 미래 먹거리의 산실(産室)이자 식량자립국의 기반이기에 온전히 생명창고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지켜야 할 농지의 진정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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