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며칠 전 지인 L을 만났다. 그와 일상을 나누겠다는 기대감은 만남 직후 무너졌다. 그가 쏟아 붓는 타인에 대한 비난을 내내 들어야만 했다. 그가 자기중심적인 기질이 강한 사람임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우월감을 드러내려는 심리가 내재화된 듯했다.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당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관계를 맺을 때 작동시키는 기제는 상대방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는지 여부로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에게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 칭찬에 인색했고, 자신에게 잘못했을 때는 그의 약점을 파고들어 흠집을 내고 비난을 일삼았다. 나는 L이 퍼붓는 불쾌한 감정을 들어주는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했다는 느낌이 들어 씁쓸하고 우울했다.

L의 어릴 적 양육 환경과 양육자와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사람은 어릴 적 부모에게서 배우고 경험한 행복과 불행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마사 하이내만 피터는 "양육 과정에서 경험하고 습득하여 익숙해진 불행의 감정을 삶에 투영하고 끌어들이려는 심리를 내적 불행"이라고 정의했다. 내적 불행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결심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내면의 힘이다. 내적 불행을 경험한 사람은 수치심, 우울, 불안, 공포, 분노 등 고통스러운 감정을 쉽게 느낀다고 한다. L의 타인에 대한 비난은 어릴 적에 경험하여 익숙해진 내적 불행의 감정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내적 불행은 부모에게서 대물림된 역기능적인 심리다.

사람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만 누군가는 행복한 삶을 거부하기도 한다. 내적 불행에 익숙해진 사람은 행복한 순간이 오면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해져 스스로 불행해지는 상황을 만들거나 불행한 삶을 선택한다고 한다. 살면서 겪게 되는 통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 자학적이고 가학적인 불쾌한 행동 등은 무의식적으로 추구했던 내적 불행의 표출일 수 있다. L과의 관계를 회상해보면서 L의 타인에 대한 비난은 내적 불행이 표출된 행동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내적 불행은 기쁨을 누리며 살지 못하게 하는 행복의 탈을 쓴 불행의 내적 표상이다.

내적 불행에 빠진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불행해지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형섭은 "일, 약물, 알코올 등에 중독되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 자해를 하는 사람, 안 해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반복하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 별 이유도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 잠을 자면 안 될 것 같아 날밤을 새면서도 자신을 불면증 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행에 익숙해져 스스로 불행해지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내적 불행에 익숙한 사람의 삶에는 엎친 데 덮치듯이 불행한 일들이 반복된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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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불행에 빠져 사는 사람은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삶에 나쁜 기운을 끼치고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내적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적 행복을 실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적 불행을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내적 불행에 직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겪는 일이기 때문에 회피하기 쉽다. 자신의 내적 불행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무의식에서 기승을 부리며 자기를 파괴하던 내적 불행은 힘을 잃게 된다. L이 자신의 내적 불행이 무엇인지를 직면하고 깨우쳐 내적 행복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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