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어느 해 여름이든 뜨겁지 않은 때가 있을까만, 이번 여름도 뜨겁다. 하기야, 이 뜨거움이 없이는 곡식이 여물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니 그렇게 불평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사계절 있는 나라에 사는 것을 감사할 일이다. 가끔 여름에 동남아 국가에 가면 그 후덥지근한 더위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두바이 같은 중동에 가면 뜨거운 열기가 괴롭게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 여름 더위를 견디고, 오히려 즐기려 한다.

여름 더위를 견디는 방법의 하나가 독서다. 법원이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를 휴정기(休廷期)로 잡고 재판업무를 하지 않는다. 그 바람에 우리 법무법인도 한가한 편이다. 직원들을 두 패로 나눠 한 주씩 여름 휴가를 실시한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법원 근처 거리가 한산하다.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휴가철임을 실감한다. 몇 가지 상담계획과 자문서 보낼 계획, 재판 일정 등을 챙긴 뒤, 책을 꺼냈다. 몇 년 전 플로리다 키웨스트 헤밍웨이 별장을 방문했다가 산 'The Sun Also Rises'(해는 다시 떠오른다)다. 고교 졸업 직후 처음 읽은 영문 소설이 그의 장편소설 'Farewell to Arms'(무기여 잘 있거라)였는데, 이번에는 그의 최초 장편소설이다. 이야기 위주로 빠르게 읽으며, 중요한 대목만 자세히 읽는다.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낼 예정이다. 그다음은 몇 년 전 사놓고 못 읽은 들르슈 '새 유럽의 역사'와 한우근 '다시 찾은 우리 역사'다. 여름 휴가철이면 국사와 세계사 개론서를 한 권씩 읽어 역사의식을 새롭게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새로 나온 책들을 읽다 보니, 위의 책들은 읽지 못했다.

사실 그동안 너무 휴대전화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기상 시간 알람부터 시작해, 화장실에서 카카오톡과 페이스북부터 보기 시작하면, 나와서도 한 시간가량을 거기에 매달려 있다. 한 주에 한두 개 글을 올리는데, 답글 올려준 이들 글을 읽으며 답례로 '좋아요' 표시나 댓글 달고, 생일 축하 메시지 등을 보내다 보면, 그렇게 된다. 틈날 때마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에서 뉴스를 확인하고, 2월부터 매달 두 개씩 올리기 시작한 유튜브 방송 '유재풍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구독자도 확인하고, 다른 유튜브도 본다. 휴대전화에 라디오 앱, 성경 앱, 만보기 앱도 설치했으니, 늘 가지고 다니게 된다. 가끔 잠잘 때 듣는 음악을 켜놓고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휴대전화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거다.

보통 중독이 아니다. 눈도 많이 나빠졌다. 휴대전화 때문에 가족이나 동료와의 대화는 물론, 혼자 생각할 여유도 많이 없어졌다. 책이나 성경과도 멀어졌다. 이래서는 안 된다. 디지털 거리두기(digital distance)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detox)가 중요하다. 2주 전 짧은 휴가를 다녀오면서 결심했다, 이제는 휴대전화와 거리를 두기로. 계기가 된 것이 재미작가 이민진의 영문소설 'Pachinko'(파친코)다. 지난봄에 사서 100페이지쯤 읽고 던져두었던 것을, 휴가 기간에 다 읽었다. 약 560페이지 분량의 작은 글자로 된 것이지만, 인내심 테스트로 생각하고 읽었다. 끝내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프린트가 좋지 않은 작은 글자 두꺼운 영문 속을 헤쳐나왔으니, 국문으로 된 것은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인해 마음껏 다니지도 못하니, 잘 됐다. 이번 휴정기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멀리하고, 책과 가까이하자. 가족 간, 이웃 간의 대화를 복원하자. 자신을 살리고, 가정도, 이웃과의 관계도 복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침 연기되었던 2020 올림픽도 열리고 있다. 올림픽도 보고, 책도 읽으며 휴식을 취하자.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이란 말이 유행한 지 꽤 됐다. 이제는 디지털기기와 종이책 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디지털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