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종업 기(氣)박사·한국정신과학학회 상임이사

바야흐로 대통령 선거열풍입니다. 여기저기서 내가 해야 된다고 자랑하는 반면, 저녀석만큼은 안된다라고 흠집내기 일색입니다. 좋게 말해 네거티브지 솔직히 말하면 저새끼는 안돼가 본심입니다. 그냥 안돼가 아니라 니 마누라가 요래서 안돼, 니 마누라 말고 바람피워서 안돼 등등 별별거 다 끄집어 내서 죽이기 열풍입니다. 참 격이 낮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격은 상격인데 반해 지도자라고 나선 이들의 격은 하격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경쟁이 아닌 싸움이 되었을까요.

역사의 흐름상 공산주의 혁명사상이 이 땅에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계급 투쟁이론이 아직 기승을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가 판치던 시절, 독립을 외치던 사람들이 당시 유행했던 사회주의에 심취해서 지식인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공산주의 이론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싸움에 이겨야 지상천국이라는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나라의 정치판을 아주 하격, 개 싸움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종족이 아닌데….

오랜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지도자를 선발할 때 각 고을에서 뿌리가 선한 사람들을 골라 맑고 향기로운 사람이 모여 신선이 되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하늘과 통하고 자연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은 머리끝 정수리 부분이 혹같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소위 정수리에 뿔이 났다, 그래서 두각(頭角)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사람이 단군이 되고 보좌진이 바람과 구름과 비를 운행하는 사람, 즉 풍백 운사 우사가 된 것입니다. 모여 수행하던 장소가 소도가 되고 여기는 신성한 장소로 도둑이 들어와도 잡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다스리는 땅,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여기입니다.

하얀 옷을 입고 하늘 본래의 빛을 찾는 사람들의 땅, 두뇌의 하얀 빛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 흰색이었기에 우리는 백의 민족이었습니다. 두각을 감추느라 상투를 틀었고 새 모양을 한 모자, 갓을 썼습니다. 우리는 그런 하늘사람, 천손족이었기에 내면의 에너지는 항상 신선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쩌다가 요모양으로 뻘밭에서 싸우는 개가 되었을까.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유럽의 노동자 농민들이 아주 힘들 무렵, 철학자 헤겔과 마르크스가 등장하여 유물론과 혁명론을 주창하였고 러시아가 이를 성공시켰습니다, 스탈린이라는 괴물은 자국민을 엄청 죽였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시키는 혁명론. 이 사상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졌고 해방이후에 남과 북으로 쪼개진 이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면 깊숙이 남아있는 신선사상은 드디어 주체사상이라는 정치철학으로 변질, 공산주의와 결합하여 정치 집단이 됩니다. 소위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이 개싸움의 본질입니다.

지금의 정권세력, 주사파 정권이라는 내면에는 정권을 잡기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인된다. 내로남불의 신념은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젊은 지식인 학생들이 매료된 사상, 토양은 전두환 정권이 제공했고 그 내면에는 북한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공부시킨 현실교육, 이걸 꽃피운 것이 노무현이며 그 후속 세력들이 잡은 정권이 지금의 문재인그룹입니다. 혁명론의 핵심은 가난한 그룹이 부자들을 족쳐서 평등사회로 간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법으로 인간을 교육하고 통재할 수 있다는 이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의 본성을 모르기에 껍데기의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니까 이런 얼치기 신념에 동화되는 겁니다.

김종업 기(氣)박사·한국정신과학학회 상임이사
김종업 기(氣)박사·한국정신과학학회 상임이사

인간의 본성은 원래부터 순수성과 맑음이 그 바탕입니다. 다만 생존의 욕구는 그 무엇보다 우선하기에 사회적 구속에도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죠. 이를 사회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나름 정리하고 학설을 만들고 하여 삶의 양식을 규정하니까 정치환경이 만들어 지는 겁니다. 다만 우리는 본성의 영역, 맑음과 순수의 영역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지키고자 할 따름입니다. 이번 다가오는 대선은 본질과 껍질의 대결입니다. 판단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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