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관종'은 관심종자의 준말로 '관심 끄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고백건대 나는 관종이다. 특히 재판정에서는 나의 사건에 심드렁한 판사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정의니 법리니 다투기도 전에 대동소이한 사건에 지친 판사의 예단에 좌절하지 않으려면 법정에서 유독 내 사건은 특별하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렇게 법정의 프로페셔널 관종이 되는 것이 변호사의 제1의 업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의뢰인들의 관심부터 끌어야 하니 생계형 관종도 되어야 한다. 결국 관심 끌기가 변호사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고등학교 때 관종으로서의 소질에 눈을 떴다.

20세기말 어느 고등학교 교실. 책상이 대략 1미터 가량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놓여있었다. 기말시험 기간 부정행위를 막고자 함이다. 그것도 모자라 책상 줄 사이사이 다른 학년 학생들과 섞어 놓았다. 시험이라는 긴장된 상황에서 낯선 이들이 섞여있는 터라 교실 분위기는 다소 삭막하다.

우리 학년은 수학과목 시험이다. 짐짓 엄격한 표정을 한 감독관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이내 맨 앞줄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시험지가 한 뭉치씩 전해진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묵묵하게 시험지를 뒤로 넘기는 사라락 소리만 들린다. 물리적 고요함에 심리적 압박이 버무려져 시험 교실은 적막의 지옥 같다.

염라대왕 같은 선생님의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발소리가 내 책상 앞에 이르러 적막이 깨진다. "풀다 틀리면 어쩌려고 수학을 볼펜으로 푸냐?" 갑자기 수험생들의 관심이 적막을 깨게 만든 원인제공자인 내게 집중된다. 민망하다.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몇 번 치르면서 내 능력으로는 수학 시험에서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서 맞출 시간 따위 남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볼펜으로 수학풀이를 하곤 했다. 시간에 쫒겨 급히 샤프펜슬 자취를 지우다가 얇은 갱지 시험지가 통째로 찢어지는 일을 겪은 이후부터는 아예 볼펜을 사용하게 됐다. 볼펜은 수정이 불가하기에 실수하지 않을 강한 집중력을 이끌어 내기에 적절했으며, 샤프펜슬처럼 심이 부러지는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샤프펜슬보다 선명하게 보이기에 실수를 줄일 수 있어 무척 만족스러웠다. 호기심 많은 감독선생님께서 적막을 깨는 지적을 하기 전까지는….

난감했다. 볼펜으로 문제를 풀게 된 개인사를 구구하게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였다. 그렇다고 풀이도구를 갑자기 샤프펜슬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시험지에 집중하여야 했다. 빙그레 웃으면서 마치 내가 학교에서 소문난 천재인양 "선생님 전 틀리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사실 당시 수학시험에서 그저 그런 성적을 받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허세가 분명했다. 나의 의외의 반응에 시험장에는 가벼운 야유와 환호가 잠시 교차했다. 그런 관종 허세는 다큐멘터리처럼 무겁기만 했던 시험장 공기를 잠시나마 만화처럼 가볍게 만들었다는 기억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관종으로 살아왔다. 변호사 미덕은 관심을 끄는 것에 있으니 적성에 맞는 직업을 제대로 찾은 것 같다. 관종이 되어 주위에 웃음을 주었지 딱히 폐를 끼치지는 않았기에 앞으로도 계속 보람찬 관종으로 살 것 같다.

특히 관종끼는 무죄를 다투는 형사재판에서 무척 유용하다. 검사가 신청한 증인에 대한 법정 반대신문을 하는 것은 관종질의 백미이다. 반대신문을 하는 변호인에게는 유도신문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된 관종질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우리쪽 진술의 신빙성을 강화하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증인 진술의 탄핵에 초점을 맞춘 신선한(?) 질문과 예상되는 답변에 대한 더 신박한(?) 재질문을 준비한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얼마 전 무죄를 얻어낸 사건의 증인 반대신문이 끝나자 방청석에 앉은 상대방측이 나를 가리키며 교활한 변호사라고 소리를 쳤다. 재판 상대방으로 비난이 담긴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곧 그에 맞서는 나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 아니겠는가? 나는 관종 변호사다. #내가 권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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