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처서(處暑)가 어제였다. 24절기 중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들며 여름 더위가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시점이다. '處'는 '휴식하다', '暑'는 '덥다'란 뜻이다. 이쯤이면 여치, 모기 등 각종 곤충이 일생을 마감하기 시작한다. 유독 매미만큼은 떠날 시간, 처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어댄다. 각종 조명 탓인지 밤에도 그치지 않는다.

종족 번식을 위한 구애의 안간힘인 데다 5~7년 동안 인고의 땅속 세월에 비하면 여름 한 철이 너무 짧아 서글퍼서 그렇다. 자칫 종족 번식을 실패한 채 생을 끝내야 하는 수컷의 절규라지만, 시끄러움을 참기 어렵다. 말매미 울음소리는 80~90db로 화물열차 소음과 같다. 한꺼번에 울 때 소음은 독창보다 2배 높은 160~170db이다.

소음공해 유발자인 매미가 황제 관모(冠帽-집무 때 쓰는 갓)를 장식했다. 익선관(翼蟬冠)이다. 날개 익(翼), 매미 선(蟬), 갓 관(冠)의 합성어로 '매미 날개 형태의 갓'이란 뜻이다. 모체가 2단으로 턱이 지고 앞보다 뒤쪽이 높고 뒤에는 매미 날개 모양의 뿔 2개가 위쪽을 향해 달려 있다. 황제가 이런 매미 날개 모양의 갓을 썼다니?

중국 진(晉) 나라 시인 육운(陸雲)은 한선부(매미를 보고 느낀 점을 적은 한시체)에서 '매미를 지극한 덕을 갖춘 벌레'라 했다. 이른바 '매미의 오덕(五德)'이다.

두 줄로 곧게 뻗은 입이 선비의 갓끈과 같고 날개가 투명해 학문에 뜻을 둔 선비와 같아 문덕(文德)이다(頭上有冠帶 則其文也), 이슬과 수액만 먹고 사니 청렴해 청덕(淸德)이다(含氣飮露 則其淸也). 시끄럽게 울어 대지만, 곡식이나 채소 등을 훼손하지 않아 염치가 있어 염덕(廉德)이다(黍稷不享 則其廉也). 집을 짓지 않음으로 욕심이 없고 검소해 검덕(儉德)이다(處不巢居 則其儉也). 운명을 미리 알고 때가 되면 알아서 죽니 신덕(信德)이다(應候守常 則其信也).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옛 중국인들은 이렇게 오덕(五德)을 갖춘 매미의 날개를 본 따 관모를 만들었다. 명나라에 이르러 이 관모를 익선관이라 불렀다. 조선 세종 때 명나라 황제가 익선관을 보내와 이후 임금들이 착용하기 시작했다. 익선관에는 '임금은 오덕을 생활화하며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통치 철학이 담겨 있다. 그저 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불평하기에 앞서 매미의 오덕을 음미해 보자. 특히 오덕이 부족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 버리는 정치인들, 가슴 깊이 새겨볼 교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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