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 공개… 전문가 "오랜기간 피해자로 살아 가해자에 종속"
두 친구, 참혹한 범죄 아픔 서로 공유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경기도의 한 수목장에 마련된 A양의 묘. A양은 이곳에 친부와 함께 묻혔다. /신동빈
경기도의 한 수목장에 마련된 A양의 묘. A양은 이곳에 친부와 함께 묻혔다.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지난 5월 12일 충북 청주에서 두 여중생이 같은 시각, 같은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안타까운 선택을 한 여중생들은 동일인물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다. A양은 가해자의 의붓딸, B양은 A양의 친구다.

두 여중생의 죽음은 '청주 계부 성폭행 사건' 혹은 '오창 여중생 사망사건' 등 하나의 사건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피고인(이하 계부) 공소장에는 '그루밍(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 성범죄'와 '가스라이팅(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해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이 의심되는 정황들이 드러났다.

계부의 범죄혐의 중 하나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제추행)이다.

B양 유족 측에 따르면 계부는 7~8년 전 자신의 집에서 A양을 강제추행 했다. A양과 그의 친모가 계부와 함께 생활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당시 A양의 나이는 6~7세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6~7년이 다시 흘러(2020년) 계부는 A양을 다시 강제추행 했고, 더 나아가 성폭행까지 했다. 다만 A양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지배하에 이뤄지는 그루밍 성범죄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A양의 가정환경 역시 그루밍 성범죄에 노출됐다. 경기도에 살다 청주시로 이사 온 A양은 성폭행 범죄가 일어난 지난해부터 올해 사망 전까지 계부하고만 살았다. 친모는 타지에서 일을 하며 가끔 왕래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릴 적 자신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계부가 주보호자다. 그루밍 성범죄의 특징인 성범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성관계에 자신도 동의했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계부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 정황도 확인된다.

또 다른 피해자인 B양에 대한 성폭행 범죄(2021년 1월)는 계부와 A양이 사는 집에서 일어났다. 당시 A양은 현장에 있었다. 사건의 핵심증인이다. 이에 B양은 고민 끝에 피해사실을 자신의 가족에게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양은 경찰조사에서 계부 성범죄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며, 진실로부터 멀어졌다. 계부 가스라이팅에 따른 A양의 공범화를 배제할 수 없다.
 

경기도의 한 수목장에 마련된 A양의 묘. A양은 이곳에 친부와 함께 묻혔다. /신동빈
경기도의 한 수목장에 마련된 A양의 묘. A양은 이곳에 친부와 함께 묻혔다. /신동빈

한영숙 청주YWCA 여성종합상담소장(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희롱·성폭력 상담지원센터 자문위원)은 "이 사건은 그루밍 성범죄·가스라이팅 정황이 충분히 보인다"며 "6~7세부터 성범죄가 있었다면, 계부에게 종속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붓딸 입장에서는 당연히 여기(계부의 집)가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 계부가 사라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놓였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성범죄가 폭력인지 계부의 사랑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오랜 기간 피해자로 살았기 때문에 무언가 숨기려고 하고 이런 행동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폭행 사건 직후 B양의 가족들은 딸과 A양을 분리하기 위해 전학을 가는 등 노력했다. 그러나 같은 아픔을 가진 여중생들은 종종 만나 서로를 위로했다. 결국 A양은 계부에게, B양은 친구의 아버지에게 당한 참혹한 범죄의 아픔을 서로 공유하다 한날한시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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