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중략)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 노래인 애국가(愛國歌)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다. 국민의례의 필수 요소다. 필자는 초교 이후 고교까지 학교 행사 때 애국가를 끊임없이 불렀다. 심지어 수업시간 중 태극기 하강식 때 수업을 중단한 채 모두 일어나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다. 물론 애국심이라는 말조차 가슴에 와닿지 않았지만 국가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나이 든 일부 사람들은 초교 때 소풍 가서 유흥 시간에 애국가를 부르다 선생님께 꾸중 들었던 웃지 못할 일화가 있을 거다. 생뚱맞은 그들의 애국가 독창은 가사 전체를 외운 동요나 대중가요가 없어 오직 가사를 외울 수 있는 노래라곤 각종 학교 행사 때 불러 가사를 자동 암기했던 애국가뿐 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던 것은 애국가가 마구 부를 수 없는 신성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유흥 시간에는 금지곡이었다. 여하튼 참 많이 불렀다. 50대 이상은 지금도 애국가 4절을 희미하게나마 외울 정도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애국가를 들어본 적이 드물고 불러본 적도 없다. 툭하면 국민의례에서 생략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 등의 회의나 행사에서 "시간 관계로 애국가는 생략하겠습니다."라는 진행자의 멘트를 흔히 들을 수 있다. 겨우 애국가 청취의 기회는 TV 방송의 시작과 끝, 외국팀과 스포츠 경기 때 등이다. 다행히도 최근 올림픽 때 메달 수여식과 한국과 외국의 구기 종목 경기에서 몇 번 들어보긴 했다.

한때 동해 물과 백두산이 아닌 침이 마르도록 불렀고 제창의 강요 대상이었던 애국가가 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는가? 국민의례 순서에는 '애국가 제창'이라 표기해 놓고 왜 생략하는가? 분명 '시간 관계상'의 명분을 달지만, 반듯이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1942년 일장기가 걸린 독일 공연장에서 연주를 지휘한 친일 사상 전력 때문일까?

아니, 자유주의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개인 자유와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한다.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존재 이유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 자유주의는 애국가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를 때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무시당했음이 옳다. 개인은 한낱 국가 구성원에 불과해 공장 기계의 부속품처럼 여겨졌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공장이며 개인은 사회 공장의 부속품처럼 취급되었다. 공장 사장이 노동자를 동원해 명령하듯 국가는 개인을 동원하고 사회 전반을 거침없이 명령했다. 명령의 명분은 국가 경제발전이지만, 저의는 군사 정권 유지였다. 자유주의의 억압과 통제는 불 보듯 뻔했다. 학자들은 이런 국가를 '발전국가'라 했다. 애국가 제창 거부나 기피는 발전국가 속에서 자유주의 억압에 대한 반발이었던 셈이다.

학생 등이 애국가 4절을 부르지 않으면 하루를 보낼 수 없을 정도였던 당시는 박정희 정권(1961~1979년) 시대였다. 이때 박 정권은 압축적 산업화를 목표로 하고 국가 이익 증진을 도덕적 이념으로 삼는 발전국가의 형태를 취했다. 개발 독재국가였고 국가주의의 전형이었다. 당시 국가주의의 레파토리가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국민교육 헌장 암기 등이었다.

국가주의(statism)는 '국가를 우월적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 권력이 사회 전반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국가주의는 '국가는 최고의 도덕이며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치행위는 절대적으로 합법이고 정당하다.'를 토대로 한다. 국가주의에선 정치 권력이란 무기가 사회 전반을 간섭하고 통제한다. 자유나 인권을 부지불식간 침해당하기 일쑤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얼마전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온 가족이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한다고 하자,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김두관 의원이 한마디 했다. "좋게 해석이 잘 안 되더라. 국가주의 냄새가 난다." 국가 강요에 의한 애국가 제창은 국가주의 냄새를 풍길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의 제창을 국가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무리다. 그 가족은 국가를 개인의 실체라 여기지 않았음은 물론 개인 자유를 위해 국가를 부정하지도 않았다고 생각된다. 국가주의의 표상보다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이지 않을까? 애국가가 사랑 애(愛), 나라 국(國), 노래 가(歌)의 합성어로 본디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다. 아무리 믿지 못할 인간이 정치인이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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