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제 8회 국제학술회의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이타주의와 평등이라는 불교 사상으로 당시 좌ㆍ우익을 통합하려 했다’.

단양 구인사를 총본산으로 하고 있는 대한불교 천태종은 지난 11월 26일 서울 관문사 옥불보전에서 ‘제 8회 천태국제불교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노르웨이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는 ‘1920∼30년대 만해 한용운의 불교사회주의’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박 교수의 이날 발표는 내국인이 아닌 북유럽 학자의 눈으로 본 만해의 모습이어서,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구인사가 보내 온 박 교수 논문에 의하며 당시 전세계를 휩쓸던 사회주의 이념은 1920년대 한국사회에서도 매우 높은 인기를 누렸고, 이는 국내 불교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급진적인 불교 개혁가였던 만해는 불교의 사회ㆍ경제적 이상을 사회주의 용어를 차용해 정의를 내리고, 나아가 이를 통해 불교 평등주의와 이타주를 재건하려 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1920년대 계급타파와 경제적 평등 등의 이념을 내세우며 등장한 사회주의는 당시 한국사회의 주류렸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진영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했고, 이로 인해 심각한 사회갈능이 야기됐다”고 밝혔다.

이에 만해는 자본주의적 비인간적인 논리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적어도 당분간은 이익을 위한 경쟁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논리로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을 설득했다.

나아가 만해는 평등주의와 이타주의의 불교 사상은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고, 이 같은 불교사회주의적 사상은 일본 불교사회주의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박 교수는 밝혔다.

그는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도 밝혔듯이 불교를 자유롭고 평등주의적이며 그리고 미래 유토파아적이며 커다란 단일체 종교로 정의하고 있었다”며 “만해는 이같은 인식을 기초로 좌ㆍ우익 진영을 통합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교수는 “대승불교도이자 선수행자였던 만해는 1920∼30년대 사회주의적 이념의 요체인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그는 결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대해 “만해가 끝까지 관심을 가진 것은 불교 이타주의와 평등주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었다”며 “따라서 그가 이타와 평등주의를 실현하는 방편으로 좌ㆍ우익 통합 노력을 기울렸지만 그는 결로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가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미국 웨스트대학 루이스 랭커스터 총장의 ‘천태의 전통과 세계관과 윤리에 관한 현재의 쟁젼, 중국 류우열 전 북경대 교수의 ‘인간불교의 이념과 실천’, 동국대 서윤길 교수의 ‘천태교학과 밀교’ 등의 논문도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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