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진호 신경외과 전문의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어려서 달동네에 살았던 필자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악몽이 떠오른다. 동네 한 집에 어쩌다 불이 났는데 주변에 불길이 번져 온 동네가 다 탄 아픈 기억이다. 너무 어린 나이라, 아침에 일어나니 까만 잿더미와 잔해만 보였고, 사람들이 옷가지만 들고 밖에 서 있던 기억만 남아있다.

최근 수술실 CCTV 설치 문제가 크게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모 척추병원 대리수술 의혹 등 수술실 안전에 대한 국민의 의심스런 시선이 이 법안 발의의 배경일 것이다.

수술실은 수술할 때나 마취할 때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더욱이 대리 수술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반면에, 수술실은 환자에게는 지극히 창피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수술실에 환자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수술복만 입고 들어가 수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전신마취라도 한다면, 환자는 모든 옷을 벗어야 한다. 예컨대, 소변량을 확인하기 위한 폴리 카테더(foley catheter)를 요도로 넣고, 수술 부위를 소독하게 된다. 이는 모두 전라 상태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혹시 리소토미 포지션(lithotomy position)이라고 들어보았는가? 수술실 특히 산부인과 영역에서 처치나 수술을 할 때 환자들이 흔히 하게 되는 자세로, 수술 침대에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진찰대 양편에 있는 발걸이에 양다리를 벌려 올린 자세로, 여성 기관을 처치하는 자세이다. 수술을 받는 당사자는 수술실 안에서조차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자세이다.

얼마 전 유수의 언론에서 다크 웹(dark web)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다크웹은 온라인 범죄의 온상으로, 불법적으로 취득한 각종 정보의 암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중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어느 성형외과의 모든 환자 정보가 해킹돼 거래된 사례다.

'악은 선의로 포장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수술실 CCTV는 분명 좋은 의도로 기획됐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 정부 기관에서조차 해킹을 막지 못하는 이 시대에 과연 환자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어떻게 의료 기관에서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가? 온라인 보안은 여전히 취약한 구조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는 '국제사회의 시대적 과제'라 할 만큼 중요한 이슈다.

김진호 신경외과 전문의
김진호 신경외과 전문의

수술실 CCTV 설치 제도가 세계 최초로 도입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향후 세계적으로 변태 성욕자나, 장기밀매조직 같은 범죄에 악용될 수 있어 해커 범죄집단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내 가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수술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가, 전세계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모습이다.

어려서 필자가 경험한 화재도,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것인 것처럼 이번 법안이 '빈대 잡으려다 의도하지 않게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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