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편히 누워 TV를 보는데 화면 아래쪽을 가리는 무언가가 있다. 오 마이 갓! 내 배다. 오후가 되면 설명할 길 없는 짜증이 폭발했던 원인이 탄수화물 부족을 가져온 일일일식(一日一食)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간 점심을 챙겨먹었더니 그 결과가 여지없이 배의 풍만한 곡선으로 표현됐다.

30대까지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너무 날카로워 보여서 걱정할 정도였다. 지금은 조금만 먹어도 영양분이 뱃살로 알뜰하게 저장되는 고효율 몸을 갖게 됐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원인은 세월의 흐름에 따른 기초대사량의 변화에 있다.

어릴 때는 기초대사량이 많아 가만히 있어도 많은 칼로리가 소모되어 살이 잘 찌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근육량이 줄면서 기초대사량이 낮아지게 되어 섭취한 칼로리의 일부만 기초대사에 쓰인다는 것이다. 기초대사에 쓰고 남은 칼로리가 신체활동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지방으로 보관되어 볼록한 배를 만든다고 한다.

누군가는(어쩌면 일반적으로는) 기초대사량의 감소를 노화의 증거라고 한다. 기초대사량 감소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진행되어 별도로 몸매를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 배가 불룩한 D자형 몸을 갖게 되는 것이 인간의 운명라는 것도 알게 됐다.

대한변호사회 청년변호사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돼 청년이미지를 유지하게 됐다고 좋아한지가 엊그제 같다. 그런데 갑자기 몇달새 중년 변호사의 배를 갖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날렵한 청년변호사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육을 만들어 기초대사량을 늘리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기초대사량을 늘려 많이 먹고 흡수한 칼로리를 쓸데없이 소비해버리는 저효율 몸이 되는 것을 분연히 거부했다. 힘들어도 일일일식을 하는 것이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 옛선비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명분도 한몫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쌓이면서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모자라게 된 마당에 근력 운동에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현실적 문제도 컸다.

일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내 능력이 모자라다는 슬픈 자기 고백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준 지혜 덕분인지, 나이가 들수록 타임 푸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럴듯한(?) 과학적 근거를 찾아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인생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10대의 시간은 10㎞/h로 흐르고, 20대 20㎞/h, 30대 30㎞/h, 40대 40㎞/h로 점점 빨리 흐른다고 한다. 결국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만큼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 시간이 모자라게 된다는 이야기다. 일좀 할까 싶으면 벌써 하루가 저물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시간도 시속 40㎞/h로 빨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시간이 느려진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반대로 느린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시간이 빨라진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동작이 날렵한 어린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어른이 될수록 행동이 점점 느려지게 되어 시간이 상대적으로 빨라지게 된다. 내가 일할 시간이 모자라게 된 원인은 게으름이나 무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렇게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회사생활을 접고 낙향하여 변호사 개업했을 때와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전과 같지 않다. 일일일식 하지 않으면 배불뚝이가 되어 수트핏이 망가지고, 빨라진 시간에 시달린다. 나이가 주는 변화는 신체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셀프 변호능력을 얻었다.

느려진 행동 탓에 늘 시간에 쫒기게 되었지만 기초대사량이 줄어들어 덜먹어도 생존할 만큼 효율 좋은 몸이 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 특수상대성이론을 들먹여 가며 나의 행동의 무뎌짐을 받아들이면서 매사에 감사해 할 수 있는 마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화엄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의 마음이 감사하면 내 나이 먹는 것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것이 곧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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